[사설] 문창극 사퇴…박근혜 정권의 신뢰 위기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2주 만에 결국 물러났다. 언필칭 공영방송이라는 KBS의 일방적인 짜깁기식 보도와 그 이후 광기 어린 친일논란이 사회를 휩쓴 결과다. 파렴치한 개인적 흠결 때문도 아니고 단지 ‘친일 프레임’에 갇혀 퇴진한 것이다. 법에 정해진 인사청문회조차 열지 못한 이번 파동은 박근혜 정부의 큰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문 후보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자진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쟁점도 불명료한 인신공격형 친일 올가미였다. 종교계 학계 문화계 언론계의 지도급 인사 수천명의 성명조차 무위로 끝났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다. 법치와 이성은 설 곳이 없어졌고, 선동과 편견이 광장을 장악하게 됐다.평소에 안중근 기념관에 꽃을 바치던 애국인사가 황당하게도 친일로 몰려 퇴진하기에 이른 과정에는 정권의 무능과 무정견, 자신감 결여, 정치권의 비이성적 반응이 자리하고 있다. 청와대는 긴박했던 요 며칠을 침묵으로 일관하다 사퇴가 발표되자 ‘청문회가 열렸어야 했는데 안타깝게 됐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을 내놨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원칙이 존중되고 청문회에서 진실이 드러나길 기다린 말없는 다수 국민일 것이다. 청와대는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결국 회피하고 말았다. 새누리당의 무지와 무책임성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논란이 된 교회강연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소위 소장파들이 성급히 몰려나와 퇴진을 요구했고,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서청원 씨 등 당내 고위인사들도 가세하고 말았다. 거짓 광우병 보도에 휩쓸린 일부 대중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일부 거짓 방송에 농락당하고 말았다.

“법을 만들고 법치의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이며,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다”는 문 후보자의 퇴임회견은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40년을 기자로 뛰었던 그는 언론에도 한마디 했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 그것만 보도해 전체의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진실보도가 아니다.” 왜곡 보도가 어찌 KBS만이겠는가. 이 시대 언론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뼈아픈 지적이다.

민주주의는 지금 바람 앞의 촛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