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커 지명'에 뿔난 영국, EU 탈퇴 수순 밟나

캐머런 "EU 남기 어려워졌다"
장클로드 융커 전 룩셈부르크 총리가 차기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에 지명되면서 영국이 EU 탈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28일(현지시간) “융커 지명 후 영국의 EU 탈퇴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개혁성이 부족한 구시대적 인물인 융커가 EU 집행위원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영국에서는 EU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이 의회 선거 1위에 오르는 등 반EU 여론이 높다.영국 주장에 따라 이번 EU 집행위원장 지명은 사상 처음으로 정상 간 합의가 아닌 투표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28개 회원국 중 영국과 헝가리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찬성했다. 캐머런 총리는 표결 후 “융커 지명으로 영국이 EU에 남는 일이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EU 협정을 개정하고 2017년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거쳐 EU에 잔류한다는 장기 전략을 세웠으나 개혁에 소극적인 융커 후보가 집행위원장이 될 경우 이 같은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융커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위기 국가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등 유럽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앞장서왔다. 과거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공용 화폐인 유로화 도입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캐머런 총리가 주장하는 ‘느슨한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영국은 경제력 차이가 있는 국가가 똑같은 화폐와 경제정책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며 유로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예산 분담금이나 통합이민법 등도 영국에는 부담 요소다.

EU 탈퇴설을 두고 영국 사회에서는 찬반 여론이 분분하다. 존 크리드랜드 영국산업연맹(CBI) 회장은 “EU는 현재 우리의 가장 큰 수출시장이고 경제 성장 가능성이 남아 있는 곳”이라며 “EU 탈퇴는 영국 경제가 고립되는 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에드 밀리반드 노동당 대표는 BBC에 “총리의 어리석은 제안으로 영국은 곧 300만개의 일자리를 잃을 위협에 처했다”며 “총리는 ‘독’과 같은 존재”라고 지적했다. 반면 파이낸셜타임스는 “융커 지명은 EU 전체에 해가 되는 일이고, 캐머런 총리가 끝까지 그를 반대한 것은 옳은 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융커는 다음달 16일 유럽의회 인준을 받은 뒤 취임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