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대책 다시 짜라] 출산율 못 높인 '무상보육'

(2) 헛 돈 쓴 저출산 정책

"믿고 맡길 곳이 없다"…부모들이 원하는 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저출산 예산 대부분이 영유아 보육 정책에만 투입되고 있는 가운데 취업모를 지원하는 정책이 지나치게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 여성 직장인들이 1일 점심식사를 마친 후 회사로 돌아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영아(0~2세)의 어린이집 이용률(48.7%)이 엄마 취업률(33.2%)보다 높은 유일한 나라다. 보육료가 소득·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똑같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도 집에서 아이를 기를 때 받을 수 있는 현금 양육수당(월 최대 20만원)을 포기하고 정부가 72만원을 보전해주는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기는 실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0~5세 보육료·양육수당 지급 등에 책정한 무상보육 관련 예산은 10조8146억원. 전체 저출산 예산(14조4000억원)의 75%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전년(1.3명)보다 오히려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엄청난 규모의 보육료 지원이 출산율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믿음은 결과적으로 그릇된 것이었다.

물론 무상보육 전체를 저출산 대책으로 볼 수는 없다. 영유아 보육료를 국가가 보조해준다는 복지의 성격도 갖고 있다. 하지만 취업 여부, 소득 수준을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쏟아붓는 무상복지는 엄연한 한계를 갖고 있다.

취업·소득 따지지 않는 전면 무상보육, 저출산 문제 더 키워무상보육 범위를 먼저 세심하게 설정하고 엄마의 취업 여부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지원하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고비용-저효율 정책

최준욱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정효율을 분석한 결과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한 출산율을 높일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보육료 지원 등 소득보전책은 전형적인 고비용-저효율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부모가 아이를 낳기 위해 필요로 하는 지원은 보육료가 아니라 국공립 어린이집 등 양육인프라 확충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2012년 영유아 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기혼자들이 정부에 바라는 육아지원정책은 ‘양육비 현금지원(18%)’보다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서비스 감독 강화(64%)’였다. 출산과 관련해 일을 그만두는 여성 중 상당수는 보육비 부담이 아닌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이 부족하다는 것을 사직 이유로 꼽았다. 현재 영유아를 둔 엄마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33.7%로 취학연령(6~18세)자녀의 엄마(52.9%)보다 훨씬 낮은 상태. 보육시설에 만족하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노동시장 이탈 확률이 21.6%나 적었다. 보육료 지원만으로는 아이를 더 낳겠다는 부모들을 늘릴 수 없다는 얘기다.

고소득층엔 별 효과 없어실 제로 보육 예산의 대부분(85%)은 보육료 등 당장의 보육수요를 충당하는 데에만 투입됐다. 보육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엔 전체 저출산 예산의 9%, 어린이집 관리 감독을 위한 평가인증엔 1%도 채 쓰이지 않았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위한 예산은 2008년 전체 보육예산의 0.8%, 2009년엔 0.5%, 2010년엔 0.1%로 줄었다. 막대한 보육예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의 어린이집 만족도는 2009년에서 2012년 사이 5점 만점에 0.02점 증가하는 데 그쳤다.

보육예산 확대가 소득 보전이 절실한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의 혜택으로 돌아갔다는 점도 문제다. 소득 하위 20% 영유아 가정이 받는 월평균 현금수당은 2007년 51만7000원에서 2011년 59만6000원으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상위 20%의 수당은 9만9000원에서 24만8000원으로 2.5배나 증가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실증연구 결과 저소득층 가구(하위 30%)는 보육비 지출액이 월 20만원 줄면 추가 자녀 출산의향이 3% 늘었지만 고소득층(상위 30%)의 경우 효과가 그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이혜원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육비 지원 같은 소득보전책은 저소득층에 써야 효과가 큰데 정부와 정치권이 갑자기 전면 복지로 돌아서면서 저출산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 부담도 안 줄어

더 큰 문제는 정부 지원이 늘어났어도 부모의 보육부담은 전혀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욕구가 높은 한국 문화의 특성상 공보육 절감분이 사보육으로 이전되는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영유아 1인당 평균 정부 지원액은 2007년 연평균 73만원에서 2011년 143만원까지 늘어났지만 실제 부모의 지출 비용은 같은 기간 206만원에서 208만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한국의 보육시스템은 전체 보육시설의 90% 이상이 민간 위주다. 보육료 부담이 줄자 어린이집이 특별활동비 등 필요경비를 늘린 영향이 컸다.저출산은 키우는 데 드는 비용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전형적인 시장실패 사례다. 아이를 하나 키우는 데 드는 평균비용은 3억896만원. 정부의 보육·양육 지원액을 최대(2024만원)로 받는다고 쳐도 부모의 부담은 크게 줄지 않는다. 실제로 부모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청소년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8415억원, 지난해 전체 저출산 예산의 6%에 불과했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젊은 층들이 아이를 낳기 부담스러워하는 이유가 정말 영유아 보육료 때문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