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기로 팬택…재기모색 박병엽

위태로운 팬택
통신3사 출자전환 결론 못 내리고 고심…매출 여전히 지지부진

절치부심 박병엽
개인회사 팬택씨앤아이 통해 큐알티반도체 인수전 참여
샐러리맨 신화 재도전
지난해 9월 팬택을 떠난 창업자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이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의 손자회사인 큐알티반도체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부회장이 재기를 시도하는 가운데 국내 3위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어 대비된다. 채권단과 통신사들은 4일까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팬택의 채권을 자본금으로 출자 전환할지를 결정한다.

○재기 모색하는 박병엽박 전 부회장은 최근 자신이 지분 100%를 보유한 팬택씨앤아이를 통해 큐알티반도체 매각주관사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큐알티반도체는 반도체와 전자 부품의 성능을 시험하는 업체. 기업가치는 100억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부회장은 “연간 매출 200억원 규모의 작은 회사이지만 보유한 기술 때문에 해외 기업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해 인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부회장은 1991년 맨손으로 팬택을 세워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인물이다. 무선호출기(삐삐) 사업으로 시작해 휴대폰 사업으로 덩치를 키운 뒤 현대큐리텔과 SK텔레텍을 잇달아 인수해 지금의 팬택을 만들었다. 거침없는 성공 신화는 창업 15년 만에 암초를 만났다. 팬택은 2006년 불어닥친 모토로라의 휴대폰 ‘레이저’ 열풍과 국내외 금융환경 악화로 2007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그는 기업회생에 매달렸다. 그러나 팬택의 회생은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 애플 등 세계 굴지 스마트폰 업체들과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진 탓이다. 박 전 부회장은 결국 지난해 9월 경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다.

그는 그간 팬택씨앤아이의 대표직을 유지하며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지난 3월 팬택씨앤아이를 통해 컨소시엄을 구성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츠토토(체육진흥투표권) 수탁 사업 입찰에 참여하기도 했다. 팬택씨앤아이는 휴대폰 부품 판매·유통업체로 팬택과 거래하고 있다.○위기의 팬택

박 전 부회장이 떠난 뒤 팬택은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채권단은 올해 3월 워크아웃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달 중순 팬택에서 받을 돈 3000억원을 출자 전환하기로 했다. 단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도 팬택 채권(판매장려금 채권) 가운데 1800억원을 출자 전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통신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채권단에 답변을 주기로 한 지난달 27일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2일 현재까지도 ‘검토 중’이다. 통신사들이 출자 전환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해 그 여파로 팬택이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면 어차피 채권을 회수하기 어렵다. 출자 전환에 나선다고 해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남아 있다. 팬택의 경영 환경이 더 악화하면 출자 전환해 받은 주식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통신사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다.

출자 전환에 성공한다고 해도 채권단의 현 자구 계획만으로는 팬택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팬택은 지난 1분기 말 기준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자구 계획대로 10분의 1 감자를 한 뒤 출자 전환을 하면 부채가 거의 없어져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과 지속적인 생존은 별개의 문제다. 팬택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선 매출이 늘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통신사가 갖고 있는 팬택 스마트폰 재고는 60만~70만대 수준. 대당 50만원으로 환산하면 3000억~3500억원 정도다. 1분기 매출(2940억원)과 맞먹는 규모의 재고가 유통망에 묶여 있다. 개통이 어느 정도 이뤄져야 신규 공급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이런 시장 상황과 팬택의 점유율을 감안하면 유통망에 묶여 있는 재고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권단은 채권상환 유예기간의 연장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통신사를 압박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통신사가 출자 전환에 무게를 두고 좀 더 검토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 채권상환 유예기간(4일) 연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