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에쓰오일 지분 전량 2조원 받고 아람코에 매각

조양호 회장, 아람코 총재 직접 만나 담판
한진해운 벌크선 사업부도 1조6000억에 팔아
자구안 반년 만에 80% 달성…정상화 청신호
한진그룹이 보유 중인 에쓰오일 지분을 약 2조원에 에쓰오일 최대주주인 아람코에 팔았다. 또 한진해운의 벌크전용선사업부 매각도 마쳤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5조5000억원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계획 가운데 80%가량을 달성하게 됐다. 부채를 줄이는 효과 외에도 약 1조2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다는 게 한진 측 설명이다. 해운업 불황과 항공업 부진에 시달리던 한진그룹이 재무구조를 개선해 정상화를 앞당길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한진그룹, 현금 1조2000억원 확보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진에너지는 2일 보유하고 있던 에쓰오일 3198만주(28.41%)를 1조9829억원(주당 6만2000원)에 에쓰오일 최대주주인 아람코의 자회사 아람코오버시즈컴퍼니(AOC)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이 인수를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에너지는 대한항공(96.59%)과 한국공항(3.41%)이 에쓰오일 주식을 보유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다. 한진그룹은 앞으로 아람코에서 받는 매각대금 중 약 1조600억원은 한진에너지의 종전 차입금을 갚는 데 쓰고, 남는 9000억원가량은 한진에너지 유상감자 후 청산 등의 방식으로 대한항공 등에 유입되도록 할 예정이다.한진해운도 최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벌크전용선사업부를 1조6000억원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차입금 상환 등에 사용되는 금액을 제하고 나면 한진해운에는 약 3000억원의 현금이 들어올 전망이다. 전용선사업부가 장부상으로는 1조6000억원에 못 미치기 때문에 장부상 매각이익도 1576억원가량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지난 3월 말 기준 908%였던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약 600%까지, 1215%였던 한진해운 부채비율은 56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양호 회장, 직접 아람코와 담판한진그룹은 비슷한 시기에 재무구조 개선 구상을 내놓은 현대그룹보다 자구계획 진행이 더디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쓰오일 주식 매각이 지지부진했던 것이 큰 원인이었다. 작년 12월19일 5조5000억원의 자구안을 발표할 때는 40%인 2조2000억원을 에쓰오일 주식 매각으로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아람코와 협상이 잘 안 됐다.

정유업황이 부진해서 에쓰오일 주가가 자꾸 떨어졌기 때문이다. 에쓰오일 당기순이익은 2012년 5851억원에서 작년 2896억원, 올 1분기 253억원으로 계속 줄었다. 주가는 작년 12월19일 7만2400원에서 지난달 5일에는 5만2700원(-27.2%)까지 내려갔다. 주당 6만8900원가량은 받아야 2조2000억원을 마련하는데 주가가 떨어지니 아람코는 계속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이 최종 담판을 지으러 나섰다. 그는 지난달 초 칼리드 알 팔리 아람코 총재를 만나 지분 매각건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람코가 5만6000원대에 거래되는 에쓰오일 주식에 약 10%의 프리미엄을 얹어 6만2000원씩 쳐 주기로 한 것은 조 회장의 막후 노력 덕분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의 담판이 협상의 큰그림을 잡아줬고 이후 실무진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세부 협의를 했다”고 전했다.

○산은, “당분간 큰 위기 없을 것”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의 구형 항공기와 부동산 매각, 한진해운의 유가증권 및 비영업 자산 매각 등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의 한진해운에 대한 4000억원 유상증자도 마무리됐다. 반 년 만에 약 4조6000억원의 자구계획을 실행한 셈이다.한진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대한항공 자회사로 들어오는 한진해운의 부실을 털어내고 대한항공 등의 부채비율을 400%까지 낮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진그룹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에쓰오일 매각 완료로 한진그룹엔 당분간 큰 유동성 위기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상은/이미아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