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의 아토피혁명(10)] 나는 왜 아토피 치료법 연구 한의사가 됐나?

필자가 아토피치료 명의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운 후 서초동에서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불현듯 옛 기억이 떠올랐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 정도 보건소에서 진료를 본 후,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그 때는 청담동의 모 한의원에서 다양한 질환을 진료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아토피 피부염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얼굴 아토피 환자는 본인의 피부를 보여주며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하고 싶다고 말했다. 필자는 처음 그 환자의 피부를 보고 증상의 심각함에 깜짝 놀랐었다.

지금 필자가 다시 그 환자를 만난다면 웃으면서 자신만 믿고 치료를 받으라고 하겠지만, 그 때는 아토피 질환을 많이 치료해보지 않았던 탓에 상처투성이의 몸을 보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의사가 환자를 보고 자신이 없다면 치료를 시작하기 힘들다. 환자에게 필자의 생각을 솔직히 얘기했고, 그 환자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때의 기억은 한의사인 필자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아토피 피부염`을 정복하고 싶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게 된 계기가 됐다.



필자는 우연히 열린의학회를 통해 박건 원장을 만나고, 당시 집필 중이던 `아토피혁명`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아토피혁명 치료법으로 중증 아토피 환자까지 치료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희망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 아토피 치료법 공부가 쌓여가면서 필자는 아토피 질환에 대한 정체성을 알게 됐고, 치료에 대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자신감으로 서초 한복판에 프리허그한의원을 시작할 수 있었고 `아토피혁명 실용편`과 아토피 논문을 집필할 수 있었다.



필자는 프리허그한의원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아토피 치료법 공부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이름이 알려질수록 오래되고 심한 중증의 아토피 질환 환자들이 필자를 찾아오고, 그것이 필자가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또 필자는 공부의 결과가 하나둘씩 나올 때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할 수 없는, 본인만의 만족감을 느꼈다. 높아지는 치료율과 증상이 좋아지는 환자들이 지어주는 웃음은 `덤`이었다. 이는 피곤함 속에서도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줬다.



현재는 프리허그한의원의 지점이 9개로 늘어나고, 많은 의료진과 동료들이 생겼다. 모두 함께 공부하고 수많은 유아아토피, 소아아토피, 성인아토피 환자를 치료하며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필자를 놀라게 했던 얼굴아토피 환자는 아직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가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지금이라도 그 환자를 다시 만난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다. 필자가 당신 덕분에 이만큼 공부하고 성장했으며 그 때는 부족했지만 이제는 당신을 치료해 줄 수 있다고 전하고 싶다.

한의사 서산은 `아토피혁명` 실용편의 저자이자, 프리허그한의원 서초본점의 수석원장이다.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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