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가개조 출발점은 이성의 회복

"국민정서가 법 위에 군림하는 현실
이성적 반성 통해 현실 판단해야
국운을 흩뜨리지 않고 지킬 수 있어"

문근찬 < 숭실사이버대 경영학 교수 >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살아온 북유럽의 핀란드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핀란드는 러시아의 속령이었던 1917년 독립을 선언한 후 강한 군대를 유지하며 많은 전투에서 러시아를 곤경에 빠뜨렸다. 하지만 1939년 겨울전쟁에서 패해 러시아와 강화하면서, 독립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묵시적 굴종’이라는 정책을 폈는데 이를 ‘핀란디제이션(Finlandization)’이라고 한다. 핀란드는 영토의 일부를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고,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보상금을 지급했으며, 오랫동안 핀란드 정계의 모든 중요한 결정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이뤄지는 굴종을 겪었다.하지만 오늘날 핀란드는 유럽의 선진국 중 하나로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당시 핀란드의 지도자가 오직 국민 감정에 편승해 국가를 경영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으로 판단한다면 핀란드는 러시아에 합병됐을 테고, 오늘날 핀란드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핀란드의 지도자가 “우리의 군대가 궤멸되기 전에 러시아와 강화하는 것이 낫다”고 국민을 설득했던 것은 국민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판단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국지전에서 러시아를 곤경에 몰아 넣을 정도의 강한 군대를 유지했지만 동시에 총체적으로는 절대적인 국력의 열세라는 객관적인 상황도 직시했던 것이다. 반면에 1910년의 대한제국은 강대국에 대적할 강한 군대도 유지하지 못했고, 국제 정세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할 만한 지도층도 없었던 탓에 결국은 일제에 강제 합병되고 말았다.

이런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면 우리가 늘 견지해야 할 우선 순위는 첫째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일, 둘째 주어진 여건 속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처신으로 불리한 지정학적 여건을 극복해 나가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강대국에 복속된 뒤의 항쟁사만을 부각하고, 어떻게 했어야 국민의 생명을 최대한 지켜내고 국가를 지킬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는 이성적 반성은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역사 인식의 결과, 이번 문창극 총리 후보자 사태처럼 국민 정서라는 감정을 맞추기 위해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할 청문회 절차마저 거치지 못하게 하는 나라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는 장차 유구한 역사를 살아야 할 후손들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나 다름 없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예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 ‘친일’이니 ‘민족’이니 하는 단어는 큰 폭발력을 갖고 있어서, 누군가 이쪽으로 내몰리면 진실의 여부를 떠나 곧바로 터부(taboo)시 됨이 드러났다. 나중에 강연의 전체 맥락을 본 많은 사람이 그 의도가 친일이 아니라 극일(克日)이었음을 알게 됐지만 한번 쏠린 국민 감정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런 현상의 심각성은, 한국 사회에서 ‘국민 정서’라는 말로 표현된 국민 감정의 분출이 점차 아무런 이성적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초법적으로 군림하며, 법치를 넘어 국가 기관의 최상위에 존재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마치 전체주의 국가에서 국가 위에 변덕스런 독재자가 있는 구조와 비슷하게, 한국은 국가 위에 ‘국민 정서’가 있는 격이다. 이런 국가구조를 바로 잡는 문제야말로 오늘날 자주 언급되는 ‘국가 개조’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비정상적인 구조의 문제가 우리끼리 이러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강대국의 틈새에서 국가를 보전해야 할 한국의 지정학적 처지에서는 국운이 걸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근찬 < 숭실사이버대 경영학 교수 kcmoon@mail.kcu.a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