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상금과 현상금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영국 해군 최악의 참사였다. 1707년 10월22일 밤, 전함 21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귀환 도중 대규모 난파를 당한 것이다. 짙은 안개 속에서 추측항법으로 항해하다 4척의 전함이 암초를 잇달아 들이받고 침몰해 1647명이 수장됐다. 경도(經度)를 몰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로선 지도의 가로선(위도)만 알았지 세로선(경도)은 알 수가 없었다.

이 엄청난 사태에 충격을 받은 영국 정부와 의회는 1714년 경도를 결정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사람에게 2만파운드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 이게 바로 경도상(經度賞·Longitude Prize)이다. 2만파운드는 어마어마한 돈으로 왕의 몸값을 상징하는 액수였다. 그만큼 ‘인류 최대의 난제’였던 것이다.경도를 찾는 게 이론적으로는 쉬웠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0도로 놓고 표준시보다 1시간 빠른 해상을 경도 15도로 정하면 됐다. 그러나 거친 풍랑과 기후 변화에도 견디는 초정밀시계를 만들어야 했다. 이를 해결한 사람은 시계공 존 해리슨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항해용 정밀 시계인 크로노미터를 발명하고 죽기 4년 전인 79세에 상금을 받았다.

그 경도상이 300년 만에 부활했는데 ‘항생제 내성 극복’에 1000만파운드(약 170억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노벨상의 10배로 세계 최고액이다. 여태까지는 ‘아프리카판 노벨상’인 이브라힘상(Ibrahim Prize)이 최고액이었다. 처음 500만달러(약 50억원)를 주고 죽을 때까지 연 20만달러(약 2억원)를 계속 준다. 다음은 2012년 저커버그 등이 만든 ‘실리콘밸리의 노벨상’ 브레이크스루상(Breakthrough Prize)으로 상금이 300만달러(약 30억원)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 게 상금만은 아니다. 현상금도 있다. 최대 현상금은 9·11 테러 주범 빈 라덴에 걸렸던 5000만달러(약 500억원)다. 최근 이라크 사태로 부각된 ISIL(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도 1000만달러(약 100억원)가 걸렸다.현존 수배자 중 최대 현상금은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와 인도 뭄바이 테러 배후인 파키스탄 갱단 두목 다우드 이브라힘의 2500만달러(약 250억원)다. 일반 범죄 최고 현상금은 영국의 4세 소녀 유괴범에 걸린 250만파운드(약 43억원)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병언 5억원이 최대 기록이다. 예부터 현상금 사냥꾼의 눈이 가장 매섭다고 했다. 상금 또한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돈의 힘은 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