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럽 외교의 새 지평

유럽의 생산·소비시장 비셰그라드 그룹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에도 도움될 것

박상훈 < 주슬로바키아대사 >
중부 유럽에 있는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4개국으로 이뤄진 지역 협의체를 비셰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이라고 부른다. 1991년 2월15일 헝가리 비셰그라드에서 공산주의 잔재 청산, 중유럽 국가 간 역사적 갈등 극복, 사회 개혁 및 유럽통합 과정 참여를 위한 공동 노력을 목적으로 협의체를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비셰그라드 그룹은 경제, 에너지, 안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내에서 공동 입장을 제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7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비셰그라드 그룹 외교 수장들과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한·비셰그라드 외교장관회의를 최초로 개최했다. 이 회의는 몇 가지 큰 의미가 있다. 첫째, 한국 기업이 EU 진출 관문인 비셰그라드 그룹 국가들과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는 전기를 만들었다. 비셰그라드 그룹은 옛 소련 붕괴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신흥 경제권으로, 유럽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EU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EU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12%에 머문 데 비해 비셰그라드 그룹은 3%의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EU 경제의 신성장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지정학적으로는 유럽의 생산기지이자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기업의 주요 생산거점이자 대규모 투자 및 교역 대상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의 현지 투자는 약 50억달러, 양측의 연간 교역량은 약 140억달러이며 진출 기업 수는 330여개에 이른다. 이번 회의에서 양측은 과학기술, 에너지, 문화, 교육 등 분야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둘째,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셰그라드 그룹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며 쌓아온 대(對)북한 관계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파트너다. 이번 회의에서 비셰그라드 그룹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지지를 표명하고 성공적인 체제 전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변화 유도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셋째, 양자관계 중심이었던 한국의 유럽 외교가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비셰그라드 그룹은 인근 국가에 체제 전환 및 EU 가입 경험을 전수함으로써 지역 안정과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중견국 외교’와 지향점을 같이한다. 이번 회의에서 양측은 아시아와 유럽을 대표하는 중견국으로서 국제무대에서 상호 협력하고 서발칸 개도국을 대상으로 한 공동 개발협력 사업 추진에 합의했다. 한국의 대유럽 외교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박상훈 < 주슬로바키아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