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여행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고갱·마티스 명작 탄생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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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2012년 10월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대표적 미술관인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주목할 만한 특별전이 막을 올렸다. ‘고갱과 이국으로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후기인상파이자 상징주의 작가로 현대미술의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한 폴 고갱(1848~1903)의 작품과 그에게 미친 여행의 영향을 짚어본 것이다.
여행과 미술
여행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낯선 공간으로의 이동이 새로운 자극제가 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은 우리를 예전에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감성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이국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빠트리기도 한다. 거기서 예술가는 새로운 감성, 새로운 사고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바탕이 된다.
후기 인상파의 거장 폴 고갱은 여행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짚어볼 수 있는 하나의 표본이다. 그는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역마살이 뻗친 사람이었다. 파리에서 태어난 고갱은 공화파 언론인인 아버지를 따라 페루에서 잠시 어린시절을 보냈다. 네 살 때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선원이 돼 배를 타고 대양을 누볐다.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주식중매인으로 살다가 화가가 되기 위해 가족을 버렸다.
1885년에는 브르타뉴의 퐁타방에 머물렀고 1887년 4월10일 프랑스에서 화가로 출세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서양의 마르티니크 섬으로 향했다. 평소 원시적 삶을 동경하던 그는 이참에 원시문화를 경험하고 아예 그곳에서 뿌리내리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낯선 풍토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병만 얻은 채 파리로 돌아왔고, 1988년 1월에는 다시 퐁타방으로 가 그곳에서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실을 단순화해 표현하는 ‘종합주의’ 회화를 창시한다.1891년 4월4일 그는 문명세계와 작별을 고하고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향한다. 그는 그곳에서 원시문명의 야성적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강렬한 빛과 색채 대비로 표현했다. 서구 기독교 문명과 남국의 원시 문명 사이에는 어떤 우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쏟아 넣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하나같이 새로운 문명, 새로운 공간과 만나는 가운데 싹튼 것이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서양미술을 대표하는 앙리 마티스 역시 고갱의 영향 아래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고갱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방랑자적 처지에서 새로운 문명, 새로운 공간과 만나며 영감을 떠올린 데 비해 마티스는 여행의 그러한 기능을 사전에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여행을 떠난 대표적 예술가다. 진정한 여행의 고수를 가린다면 그에 필적할 사람은 드물다. 그는 대단히 지적인 사람이었지만 평소 예술 작품의 창작에 있어 본능과 직관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여행은 그런 그의 생각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여행은 곧 영감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는 잠시도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그림이 팔리기 시작한 1906년부터 그는 매년 두세 차례 해외여행에 나섰고 프랑스에서도 파리와 지중해 연안의 남프랑스를 수시로 오가며 지냈다. 그가 사랑했던 니스에서도 수없이 거처를 옮겼다.그가 강렬한 색채 대비와 평면적인 화면을 특징으로 하는 야수파에서 탈피해 그의 전형적인 양식을 구축한 것은 두 차례의 모로코 여행을 통해서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곳의 녹색에 매료됐다. 또 그곳의 투명한 대기는 모든 대상을 평면적으로 우리 눈에 전달한다는 점도 깨닫는다. 그의 그림의 전형적 특징인 녹색의 애호, 강렬한 원색 대비, 평면적 화면, 장식적 아라베스크 무늬의 사용은 여행을 통해 숙성된 것이다.
스위스 출신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정영목 옮김)
예술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예술은 늘 새로운 장소를 필요로 한다. 고갱과 마티스는 단적인 예일 뿐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