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재무담당자 모임 'WCFO' "정보·인맥 넘어 삶을 공유하는 관계가 됐죠"

만남이 좋다

한국CFO스쿨 출신 주축 20여명
첫 여성 팀장·임원 훈장 단 여걸들
"친정 분위기"…경험 공유 큰 도움
여성 예비CFO(WCFO) 모임 회원들이 지난 17일 서울 청담동 알리고테 레스토랑에서 모임을 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너무 일만 하면 안 돼. 죽도록 일하는 사람보다 취미도 있고 놀기도 잘하는 사람이 결국 승진한다고.” “후배들 들어오면 일단 무조건 반말을 하고 잘못하면 정강이를 걷어차.”

웃음이 연신 빵빵 터졌다. 그러나 때로는 집중해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 20대부터 50대까지 20여명의 여성이 모인 자리는 이처럼 유쾌하면서도 진지했다. 나이는 천차만별이지만, 대가족의 구성원처럼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는 이들은 ‘WCFO(Woman Chief Finance Officer)’의 회원들이다. WCFO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여성최고재무책임자.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이거나, 그 자리를 꿈꾸는 여성들의 모임이다.WCFO는 재무교육업체인 한국CFO스쿨 출신이 주축이다. 한국CFO스쿨에서 분사한 기업전문교육업체 피플앤인사이트의 김현주 대표(41)가 3년 전 여성 재무인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여성 재무인력은 숫자가 적고 교류도 거의 없어서 모임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민간기업에서 CFO를 거친 양미경 상지대 교수(51)와 이희숙 한국보랄석고보드 부사장(CFO·52)이 ‘멘토’를 자처했다. 국내외 기업과 증권사, 회계법인, 사모펀드 등 다양한 업종과 직군의 여성 재무인력들이 멤버 간 추천을 통해 모였다. CFO를 희망하는 대학생 서포터즈 3명이 모임 준비를 도왔는데 이들 중엔 이미 어엿한 직장인이 된 사람도 있다.

WCFO는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다. 기업경영이나 재무·회계는 물론 영화, 커피, 동양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WCFO에 합류한 지 1년6개월 정도 됐다는 이우화 맨파워코리아 상무는 “평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업무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25년 사회생활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모임”이라고 말했다.WCFO의 처음 목적은 다른 모임과 같이 정보공유와 인맥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그들은 말했다. 하나같이 ‘친정 같다’고 표현할 정도다. 정홍선 유니코써어치 이사는 “여기 모인 사람 대부분은 각 조직에서 첫 여성 팀장, 첫 여성 임원의 훈장을 달았다”며 “서로 성공담, 실패담을 얘기하며 동료의식과 동병상련을 느꼈다”고 말했다. 승진 비법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육아와 일을 효율적으로 병행하는 방법, 말 안 듣는 후배 다루는 법 등 서로의 속내를 터놓으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다양한 업종, 다양한 직군에서 모여 서로 경쟁관계가 아닌 것도 이 모임이 더욱 끈끈할 수 있는 이유다.

남자들과의 경쟁에 지쳐 직장생활을 그만두려 했다가 모임을 통해 힘을 얻고 오히려 승진 기회를 잡은 회원도 여럿 있다고 했다. 핸드백 브랜드 코치코리아에서 재무업무를 맡고 있는 임태은 팀장은 “일밖에 모르는 독종이 아니면 여성 임원이 될 수 없다는 선입견이 많지만, 일과 가정을 잘 꾸리고 모임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선배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