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네트워크'는 PB센터로 통한다

인사이드 스토리

미래에셋證 '글로벌리더스'·삼성證 '넥스트CEO 포럼' 등
PB에 대한 신뢰가 모임 기초
사업 상담서 취미 공유까지…특별한 '그들만의 리그' 형성
반도체 웨이퍼 2차 부품 업체를 경영하는 안모 대표(37)는 요즘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3년간의 연구개발(R&D) 끝에 생산을 시작한 신제품의 판로를 지난달 겨우 뚫은 덕택이다. 납품계약을 맺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증권사 프라이빗뱅킹(private banking·PB) 센터의 ‘오너 2세’ 모임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 모임에서 만난 동료의 소개로 납품업체를 찾은 것. 그는 “이런 모임을 주선한 PB뿐 아니라 멤버들에게 크게 한턱 냈다”고 말했다.
○M&A 상담까지 … 못할 게 없는 모임금융회사 PB센터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고소득층인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의 네트워크 허브로 뜨고 있다. 자산가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금융회사 PB들이 가입조건을 엄격히 규제한 모임을 만들면서 PB센터를 중심으로 특수계층의 사교·비즈니스 클럽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WM센터원이 2011년 만든 ‘글로벌리더스’도 오너 2세 모임 중 하나다. 글로벌리더스는 매출 500억원 이상 중견기업 대표로 가입자격을 제한했다. 매달 둘째주 화요일엔 WM센터원에서 ‘저명인사 강연회’도 개최한다. 강연자는 이병국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손일선 도쿄대 교수 등 각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이다.

강연회가 끝나면 사교 모임이 열리고, 이렇게 친해진 멤버들은 주말 취미모임을 함께하며 친목을 쌓는다.삼성증권은 수도권과 부산 지역의 오너 2세로 구성된 ‘넥스트CEO 포럼’에 이어 ‘분당 포럼’ ‘여의도 포럼’ 등 기업 최고경영자(CEO) 네트워크를 지원 중이다.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남센터는 올봄 게임업체 CEO 대상 모임을 열었다. 가을엔 바이오업체 대상 모임을 기획 중이다.

한 증권사 PB는 “VVIP 모임에서 인수합병(M&A) 상담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KDB대우증권 관계자는 “지난달 한 고액자산가 모임에서는 회원 간에 수백억원대 부동산 거래가 이뤄졌다”며 “회원 간 신뢰가 이런 큰 물건을 거래하는 밑거름”이라고 설명했다.

○회원간 상부상조·소통 활발PB센터가 주도해 만든 VVIP 모임은 사업이나 재테크 같은 딱딱한 주제로 시작하지 않는다. 중견·중소기업 오너 2세 모임이나 고액자산가 모임 등도 있지만 미용 패션 등 가벼운 주제를 중심으로 엮기도 한다.

장영준 대신증권 압구정지점 부지점장은 최근 40~50대 남성 VVIP 10명의 모임을 만들었다. 구성원은 제약사 대표, 대형 로펌 변리사, 자수성가한 사업가 등이다. 모임 구성원들은 임종현 피부과 전문의(피부미용 클래스), 이기연 숙명여대 교수(오페라 클래스), 남훈 알란컴퍼니 대표(패션스타일링) 등 최고 전문가들의 강의를 매주 평일 저녁 무료로 듣는다.

○PB센터 운영 ‘VVIP 모임’ 확대금융회사들도 밑지는 장사를 하는 건 아니다. 삼성 현대증권 등 6개 증권사 VVIP PB센터 14곳의 운용자산은 2012년 말 20조4628억원에서 올 6월 말 기준 30조845억원으로 약 10조원 급증했다. 한 PB센터장은 “모임을 통해 알게 된 VVIP가 계좌를 만들겠다며 큰돈을 맡기기도 했다”며 “고객 기반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최근엔 기업을 운영하는 VVIP들과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자사주 매매나 취득, 유상증자 등의 주관을 맡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선 PB들이 구성한 VVIP 모임이 점점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PB는 “VVIP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상당히 신중하지만 기본적으로 재산을 속속들이 공개한 PB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모임에 거부감 없이 참여한다”며 “PB들도 모임을 지원하지만 ‘영업’의 ‘영’자도 꺼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일 정도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황정수/박한신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