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격전지 가다] '朴의 남자' vs '盧의 남자' 전남 순천·곡성, 이정현 "예산 폭탄"…서갑원과 숨막히는 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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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물" 분위기속 "그래도 야당" 표심 엇갈려지난 22일 오전 전남 순천시 풍덕동에 있는 전통시장 아랫장에 이정현 새누리당 순천·곡성 보궐선거 후보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행원 없이 1주일째 홀로 자전거를 타고 시장과 골목을 찾아다닌 그는 팔과 얼굴이 까맣게 탄 모습이었다.
일부 여론조사, 李가 '박빙 우위'
시장 앞에 걸린 그의 선거용 현수막은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대신 검은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선거 캠프는 보좌진 등 8명의 조촐한 모습이었다. 시장에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시민들이 “같이 사진 찍자, 악수 한 번 하자”며 몰려들었다.선거 운동 초반 견고한 호남 지역주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이 후보가 순천·곡성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순천·곡성은 지지층을 쉽게 바꾸지 않는 50~60대 유권자가 43.9%(2014년 4월 기준)로 인구 고령화 추세가 뚜렷한 곳 중 하나다. 특히 이곳은 경쟁자인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지난 17·18대 때 당선됐던 전통적인 야권 텃밭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지 유권자들은 지난 6년 동안 총 네 번의 재·보궐선거를 거치며 당보다는 인물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옥수수를 사들고 가던 주부 임모씨(55)는 “이제는 당을 떠나서 인물을 보고 찍을 때가 됐다”며 “여태껏 야당만 뽑다가 경기가 다 죽었어”라고 했다. 아랫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박상철 씨(63)도 “야당 텃밭인 순천에서 이 후보가 되고 영남에서도 야당 후보가 되고 그래야 나라가 화합하지”라고 말했다. 반면 옆에 있던 조계남 씨(55)는 “인물로 보더라도 통합진보당 때문에 죽어 있는 순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일꾼은 그래도 서갑원뿐”이라고 반박했다.
‘박(朴)의 남자(박근혜 대통령)’ 대 ‘노(盧)의 남자(노무현 전 대통령)’ 간 대결로 비쳤던 선거 구도는 초반 서 후보가 앞서가다 일부 조사에서 이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했다. 여수MBC·순천KBS와 미디어리서치가 20~21일 순천·곡성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이 후보는 38.4%, 서 후보는 33.7%의 지지율을 나타냈다.선거 운동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후보가 터뜨린 ‘예산 폭탄’ 발언도 추격의 발판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날도 이 후보는 정권 실세라는 장점을 내세워 순천대 의대 유치, 순천만정원 국가정원화, 광양만 개발 등을 위해 많은 예산을 끌어오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예상 밖 선전에 새정치연합은 지도부를 총동원해 릴레이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날 김한길 대표와 정세균 전 대표가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다. 김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호남을 괄시하는 박근혜 정부의 오만, 독선, 고집, 불통을 혼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 후보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한 무능한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뽑아 달라”고 했다.또 “이 후보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여왕의 남자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국민을 왕으로 모시고 국민을 대통령으로 모셨던 노무현의 남자”라고 강조했다.
순천=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