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인터뷰] `명량` 최민식, "30년 연기 인생의 원동력은 나"

이름 석 자 만으로도 신뢰 가는 배우 최민식(52). 누가 그의 연기에 의심을 표할까. 믿고 보는 배우 최민식이 이번엔 이순신 장군으로 돌아왔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과 싸운 ‘명량대첩’과 함께.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 제작 빅스톤 픽처스)에서 최민식은 20kg의 갑옷을 입고 360도 회전이 가능한 짐벌(Gimbal) 위에서 해상 전투신을 촬영했다. 부상도 있었고, 추위와 더위랑 싸워야했다. 그럼에도 그를 힘들게 했던 건 이순신 장군이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었다.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강박과 집착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간절함에서 관객들은 어느 순간 이순신 장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완벽한 인물, 이순신에게 매료당하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다는 건 배우 최민식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중압감과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다. 영화에 대해 기대하는 사람들도,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모두 신경 쓰였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적힌 이순신의 모습이 그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어느새 그도 이순신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이순신을 연기하기 위해 준비하던 그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아가면서 완벽하게 매료당했다.



“과거에는 편했어요. 실존인물이든 가공인물이든 결국엔 제 상상력이 동원돼야 해요. 실존인물이어도 같은 시대에 산 사람도 아니고 후손들의 재해석이 들어가게 되잖아요. 그걸 두려워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분은 절대적인 위치에 있고, 선호도 면에서 위인 중에서도 거의 넘버원이에요.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몇 개월 동안 난중일기도 처음으로 읽었어요. 그 분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정말 매력적인 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군인으로 인간으로 남자로, 누군가의 아들로 또 누군가의 아버지로 무척이나 매력적인 분이었어요. 어쩌면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죠. 왜 이순신 장군님을 성웅이라고 평가하는지 알게 되면서 더 욕심이 났어요. 하지만 함부로 상상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졌어요.”

베테랑 연기자 최민식은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며 막연한 강박에 휩싸였다. 그 분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가능하지 않은 욕망이었다. 영화가 끝난 지금도 그런 집착이 남아있다. 개운치 않은 감정이 그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실존인물인 화가 장승업을 연기한 영화 ‘취화선’ 때도 이렇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고 창작을 좋아하는 것 등 자신과 장승업의 공통점을 찾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끝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순신 장군님에게 물어보고 싶었죠. 그 분은 뒤돌아 계시고 제가 문을 두드리며 10분만 이야기해주면 안되냐고 물어보는 상상을 했어요. 왜 싸우셨는지 물어보고 싶었죠. 그런데 뒤도 안 돌아보는 느낌이었어요. 그 막막함. 정말 이런 강박에 휩싸인 건 처음이었어요. 흔히들 그분이 오셨다고 그러죠. 그런 이야기는 택도 없어요. 그 분이 저를 받아들이지 않는 느낌이에요. 김 감독하고 술 마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 마지막으로 현충사 가서 인사드리자고 했죠. 그때는 뭔가 이야기를 해주실까요? ‘수고했다’고 해주실까요? 지금도 막막함이 있어요. 예의인 것 같아서 마지막 인사는 꼭 하고 싶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어요.”







◆ `난중일기` 속에 담긴 인간적인 모습과 자기수양



최민식은 `난중일기`와 저술서를 왔다갔다하면서 이순신 장군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난중일기`를 통해 위중한 시기에 민심을 어지럽히는 자에게 곤장 팔십대를 쳤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술을 마셨다는 내용까지 이순신 장군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게 됐다.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슈퍼맨’인줄 알았던 그 분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했다. 최민식은 더욱더 이순신 장군에게 빠져들었다.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기보다 내가 간직하는 글이에요. 미사여구를 쓸 수 있어요. 그런데 `난중일기`에는 시적인 표현이 없어요. 하지만 비를 두 번이나 반복하는 부분이 있어요. 한자로 치면 ‘雨雨’ 이런 거죠. 거기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깊게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반복에서 그런 게 읽혀지더라고요. 굉장한 슬픔, 안타까움, 탄식도 느껴지고 지금의 처지에 대한 외로움도 느껴졌어요. 슈퍼맨일줄 알았던 그분의 여린 감성과 인간적인 면이 느껴졌어요. 누가 찾아와서 약주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약주가 과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술을 좋아하셨더라고요.(웃음) 또 지휘관으로서 적을 경계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적혀있죠. 그런 게 와 닿았어요. 재밌기도 하면서 이런 모습이 묘사가 됐었나 싶기도 했죠.”



최민식은 “단순한 영웅으로, 그리고 무사의 이미지만 있었다면 이런 강박까지는 없었을 거다”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의 인격을 느끼고 알아가게 되면서 정말 궁금해졌고 만나고 싶어졌다. 인간적인 면모에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왕과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단 12척의 배로 싸웠다. 무엇이 이순신 장군을 싸우게 했던 걸까.



“군인이 조국에 충성을 다하는 것. 이건 불멸의 법칙이에요. 하지만 어느 인간이 죽음을 앞에 두고 초연해질 수 있을까요. 더구나 선조는 이순신 장군님을 죽이려고 했어요. 또 군량미나 전력 면에서도 그렇고 죽음 일보 직전에서 죽기를 다해 싸우려고 해요. 왜 서운함과 원통함, 섭섭함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충은 임금이 아닌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신념들로 싸웠어요. 그런 것들은 일기를 쓰는 습관에서 나온 것 같아요. 일기를 쓴다는 건 자기점검이죠. 그 분은 끊임없이 그날의 역사를 정리하셨어요. 서술로만 끝나지 않고 자기를 되돌아보고 다그치고 추스르셨어요. 끊임없는 자기수양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기셨어요. 그 점이 위대한 것 같아요.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죠. 사실 실천하는 게 가장 힘들잖아요.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게 이해 불가잖아요. 그런데 고서를 봐도 그렇고 누가 조작한 것도, 신격화한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더욱 보고 싶었어요. 상상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아요. 팩트가 존재한다는 절망감. 도대체 어땠을까. 잡고 싶은데 못 잡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 “이순신 장군님에게 어떻게든 다가가고 싶었다”



최민식은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상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쌀가마니를 들고 있는 것처럼 몸은 힘들었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주변에서 ‘내일 찍을까요?’라고 할 정도였다. 그 순간 최민식은 이 장면에선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이순신 장군의 생각은 아닐까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강박이 심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단다. 또한 최민식은 씻김굿을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종교적인 걸 떠나서 씻김굿은 죽은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천도하는 그런 형식의 굿이에요. 처음부터 숙연했고 의식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대성통곡 했어요. 다들 같이 울었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어요. 장군님 옷을 태워서 보내드리는 의식도 있었어요. 합성섬유가 들어가서 연기가 새까맣게 나요. 저보고 연기를 맡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기침이 나야 돼요. 그런데 그냥 수증기를 맡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불가사의한데 기침이 안 나더라고요. 인간문화재인 만신께서 ‘장군님이 잘 놀다 가셨다’고 하시는데 정말 되묻고 싶었어요.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서라도 다가가고 싶었고...집착이 강했던 것 같아요.”



완성된 영화를 본 최민식은 “징글징글하다. 묵은 지(묵은 김치)를 꺼낸 기분이다.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주마등처럼 저 놈이 다쳤었지, 날씨가 더웠지, 진짜 추웠지 그런 것들이 생각나 짠했다”고 말했다. 또한 함께 연기한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특히 일본 배우인 오타니 료헤이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걱정과 귀 부상에도 열연을 펼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배우 최민식은 1982년 극단 `뿌리 우리 읍내`로 연기를 시작했다. 어느새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이순신 장군은 백성을 위해, 조선을 위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꿨다. 그렇게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과 맞섰다. 그렇다면 배우 최민식이 끊임없이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시간상 최민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을 믿고 충실하게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인 것 같아요. 기댈 건 나밖에 없죠. 내가 하고 싶은 작업에 충실해야 돼요. 나를 다그치는 거죠. ‘명량’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두려움 속에서 시작했지만 보람이 있어요.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그 분에 대해 이렇게 알릴 수 있으니까요. 원동력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의지해야 되는 건 나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고 혼자 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그 영향과 자극을 어떻게 녹여내느냐가 중요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더 매달리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고 생각하죠. 늘 더 옳은 작업을 하려고 해요. 대중들의 평가는 무섭지만 고맙고 감사하죠. 하지만 너무 일희일비하거나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충실하게 작업하면, 그것이 퀄리티로 연결되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외골수 같지만 대중들도 내말에 귀 기울여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호불호가 나뉘지만, ‘너는 왜 좋아’라고 물어보는 것이 재밌고 당연히 그래야 돼요. 그건 관객의 선택이고 절대적인 대중들의 것이에요. 열어놓고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알아야하죠. 이제 그 정도 여유는 생긴 것 같아요. 만약에 십년 전이었다면 화가 났을 것 같기도 해요.(웃음)”(사진=영화 `명량` 스틸컷, 퍼스트룩)



한국경제TV 양소영 기자sy7890@b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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