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미술 사전' 김달진 소장, 정부 지원 끊겨…40여년 모은 2만여점 기증

고통스러운 결정

'임차 지원금'으로 무료 공개
보관장소 마련 못해 축소 이전
서울 인사동에서 이 사람과 한 번이라도 마주치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미술애호가가 아니다. 30년 넘게 한 주도 빠짐없이 금요일마다 인사동 화랑가를 돌며 전시 도록과 각종 미술자료를 수집한 ‘미술 자료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김달진미술연구소의 김달진 소장(59·왼쪽)이다.

김 소장이 40여년간 모아온 미술 자료 2만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오른쪽)에 단계적으로 기증하기로 하고 3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기증협약식을 했다.김 소장이 기증하는 자료 중에는 1926년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보통학교 도화첩 제4학년 아동용, 1956년 창간된 미술 잡지 ‘신미술’ 창간호와 2호, 윤희순 등 미술사학자들의 글이 실린 잡지 ‘향토’ 창간호 등이 포함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증받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뒤 디지털 정보실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월간 ‘전시계’와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 등을 거친 김 소장은 미술 관련 인사의 이름만 대면 그 자리에서 프로필을 줄줄이 읊어낸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걸어다니는 미술 사전’이다. 그가 그동안 수집한 미술 자료는 18t의 방대한 분량이다.

그는 서울 창전동에 한국미술정보센터를 내고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일반에 무료 공개해왔다. 그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 전용공간 임차 지원 사업’에 선정돼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오는 9월30일로 정부 지원이 끊기게 돼 마땅한 보관 장소를 마련하지 못한 김 소장은 고민 끝에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료를 기증하게 됐다. 창전동의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규모를 축소해 오는 11월 서울 종로구 홍지동으로 이전한다.김 소장은 “정부가 ‘문화융성’을 주창하면서도 아카이브 서비스 같은 기초 작업은 외면한 채 비엔날레와 레지던시 같은 가시적인 사업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