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심판으로 끝난 '미니총선'…승패 떠나 '정치 불신'만 키웠다

막판까지 돌려막기 공천
'세월호 괴담' 정략적 이용
상대방 흠집내기도 여전
< '朴의 남자' vs '盧의 남자' > (왼쪽)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30일 곡성군 한울고등학교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오른쪽)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30일 순천시 조곡동 제3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이정현 후보 블로그/연합뉴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30일 전국 15곳에서 실시됐다. 역대 재·보선 사상 최대 규모여서 ‘미니 총선’으로 불렸다. 그러나 정치권이 ‘승리 지상’에 매몰되면서 정치 불신을 키웠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6·4 지방선거의 연장전 성격으로 ‘안정적 과반의석 확보’와 ‘정권심판론’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여야 간 이해관계가 정면 충돌하면서 초반부터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다.

여야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낙하산 전략공천’ 전략을 폈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매번 상향식 민주적 공천을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투명경선 원칙을 내세우며 후보자를 공모하는 시늉만 내더니 전략공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과정에서 연고가 전혀 없는 ‘낙하산 공천’ ‘돌려막기 공천’ 등으로 당내외 갈등이 분출됐다. 이번에 양당이 겪은 공천파동은 선거 후에도 적잖은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여야가 최대 승부처로 삼은 서울 동작을을 비롯해 수원 등 수도권에 대한 여야 공천은 ‘헛발질’과 ‘자충수’의 연속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누리는 당초 동작을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낙점하고 지도부가 ‘십고초려’에 나섰으나 설득에 실패했다. 막판 부랴부랴 ‘나경원 카드’를 내세웠다. 새정치연합은 광주에 후보신청을 낸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동작을에 출마시켰다.

지역구 터줏대감으로 20년 지기인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의 당 대표실 점거 등으로 적잖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선거 막판 기동민 후보가 사퇴하고 노회찬 정의당 후보에게 양보하면서 ‘꼼수 단일화’라는 비판도 일었다. 제1야당이 서울에서 후보를 안 낸 결과를 낳으면서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전략공천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새누리당이 경기 평택을에 출사표를 던진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수원정으로 돌린 것이나 새정치연합이 국정원 댓글 사건 고발자인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광주 광산을에 공천한 것 등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낙하산 전략공천이 판을 치다 보니 51명 후보 중 8명이 출마한 선거구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후보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선거인 명부 작성 기준일인 선거일 22일 전(7월8일)까지 주소를 옮겨야 했으나 여야 모두 극심한 눈치작전 끝에 막판 전략공천을 하면서 일부 지역은 9일 이후에야 후보가 확정된 탓이다.

나경원 후보와 권은희 후보뿐만 아니라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의 새누리당 이중효 후보, 경기 수원을의 새정치연합 백혜련 후보를 비롯해 통합진보당 1명, 노동당 1명, 무소속 2명의 후보도 한 표를 행사하지 못했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낙하산 전략공천으로 후보를 급조하다 보니 후보 간 치열한 공약 경쟁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최근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이번 재·보선에 출마한 후보자 55명 중 43명이 공약 이행에 관한 재원 조달 방안을 명시하지 않거나 막연하게 제시했다.수원을(권선) 지역의 정미경 새누리당 후보 등 여론조사에서 앞서거나 인지도가 높은 출마자는 상대방의 토론회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동작을에서도 나 후보가 노회찬 후보의 요청을 거부하면서 야권 후보 단일화 이후 토론회가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또 후보 간 토론회가 이뤄져도 상대방 흠집 잡기, 허위사실 공표 등으로 파행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선거기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세월호 괴담이 유포되면서 여야는 이를 당리당략적으로 선거에 이용하기도 했다.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다, 유병언 회장 시신은 가짜” 등 의원들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세월호 국정조사 시기와 특별법 제정 등을 놓고도 힘겨루기로 일관했다. 선거 막판 ‘유병언 시신’이 선거의 돌발 변수로 떠오르면서 여야가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