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경 부회장 "화랑경영 20년 경험·노하우 살려 침체 미술시장에 氣 불어넣겠다"

문화경영 25시, CEO가 뛴다 (5) 미술경매 서울옥션 첫 여성 대표 이옥경 부회장

고미술품 경매 활성화…스타작가 발굴에 총력
보석·시계·오디오·와인 등 테마옥션도 적극 추진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이사 부회장이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하우스에서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서울 평창동에 있는 서울옥션하우스의 미술품 경매 현장.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 6월17일 경매가 벌어질 때 처음부터 끝까지 객석을 지켰다. 김현희 경매사가 낙찰을 알릴 땐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좋은 작품이 유찰될 땐 손에 땀을 쥐며 안타까워했다. 20년 동안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일했던 이 부회장이 관계회사인 코스닥 상장 미술품 유통업체 서울옥션 대표로 취임한 뒤 첫 경매다. 최근 그를 만나 첫 경매 참관 소감을 물었다.

“가나아트갤러리 대표 때는 손님이 오면 모시고 와서 잠시 함께 경매에 참관하는 정도였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서울옥션 대표로서 주관하는 만큼 모든 과정을 다 자세하게 지켜봤죠. 경매사의 모습, 손님들 반응, 직원의 손님 응대를 보며 많은 걸 느꼈습니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좋은 계기가 됐어요.”

이날 경매에서 눈길을 끈 것은 전체 출품작의 절반에 가까운 88점이 고미술품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이 오랫동안 가나아트갤러리 대표(2000년 1월~2014년 5월)로서 주로 서양미술과 한국 근현대미술을 취급해온 점을 감안할 때 데뷔 무대가 고미술 중심이라는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해외시장에서 같은 시대 작가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전통미술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국 고미술품이 자국 경매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자 서양 미술품애호가(컬렉터)들이 중국의 고미술품은 물론 현대 미술품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잖아요.”이 부회장은 국내 스타작가의 발굴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이우환 같은 작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며 “경매시장도 국내 유망 작가를 발굴해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다른 국내 경매사와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미술품 1차 판매시장(작가→미술품애호가)인 상업화랑에서 오랫동안 쌓은 노하우를 미술품애호가 간 2차 시장(경매 및 재판매시장)에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있을 수 있는 의혹에 대해서는 화랑-옥션 분리 원칙을 엄격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이 부회장은 강조했다. 경매의 성패는 작품성과 투자가치를 겸비한 작가와 작품을 찾아내는 데 있는 만큼 갤러리 대표로서의 오랜 경력이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그는 기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미술품 이외에 다양한 품목을 경매하고, 중저가 작품을 많이 내놔 경매 진입 문턱을 크게 낮출 계획이다. 그는 미술 작품 일변도에서 벗어나 보석, 시계, 오디오, 음반, 와인, 패션·디자인 제품 등 테마옥션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이 부회장의 일과는 숨가쁘게 돌아간다. 그는 아무리 늦어도 오전 6시 이전에 눈을 뜬다. 오전 8시~8시30분쯤 회사로 출근해 팀장회의를 주재하고 점심과 저녁에는 작가, 고객과 만난다. 1주일에 두 차례 조찬 모임에도 참석한다. 바쁜 일상으로 쌓인 스트레스는 명상과 주말 트레킹으로 날려보낸다.

“가나문화포럼을 10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최고경영자(CEO)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 만들었어요. 미술은 물론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죠.”

가나문화포럼은 명사들의 미술 모임으로 유명하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신용극 몽블랑 회장, 정우현 MPK(미스터피자코리아)그룹 회장, 이봉진 자라코리아 대표 등 45명이 회원이다. 황창규 KT 회장,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도 한때 멤버로 참여했다.그는 앞으로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보다 적극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컬렉션을 하든, 재테크를 하든 중요한 것은 문화를 즐기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그런 문화를 가꿔 나가려면 교육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갤러리 대표에서 물러날 때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씨 뿌리는 역할에서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경매시장 역시 그 씨를 뿌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단다. 미술품 애호가가 그림을 사도록 만들려면 미술에 친밀감을 갖도록 계발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옥션의 CEO로서 앞으로 어떤 문화의 씨앗을 뿌려 나갈지 주목된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