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윤 상병 사망' 쉬쉬…뒤늦게 "살인죄 검토"

국방장관·육참총장 "4개월 지나 폭로된 뒤 알아"
국방부·육군 끝까지 책임 회피 급급…문책론 확산
< 한민구 장관 ‘대국민 사과’ >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4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최근 발생한 28사단 윤모 상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 28사단에서 선임병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윤모 상병이 숨진 사건과 관련해 육군의 은폐 의혹이 제기되면서 군 수뇌부에 대한 문책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4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28사단장을 보직해임했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파장 축소 위해 은폐 의혹국방부는 윤 상병을 지난 4월10일부로 순직처리하고 5월8일 일병에서 상병으로 추서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6일 오후 윤 상병이 선임병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쓰러지자 “(윤 상병이) 음식물 취식 중 의식을 잃었다”고 소속 대대 지휘통제실로 보고됐다가 당일 밤 선임병들의 폭행으로 쓰러졌다고 정정 보고됐다.

군 당국은 사고 발생 다음날 ‘(윤 상병이) 선임병들에게 맞고 쓰러진 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숨졌다’고 언론에 알렸다. 이후 군은 조사과정에서 피해자가 상습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한 것을 확인하고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군 당국이 사건의 심각성과 관련자의 징계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보안에만 치중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도 문제다. 육군은 4월 초 합동 조사 직후 윤 상병의 몸이 시퍼렇게 멍이 든 상태였으며, 부대 내에서 가래침을 핥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포착했다. 그러나 권오성 육군 참모총장은 지난달 31일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하기 전까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방현안 질의에서 “지난달 31일에야 사건을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3군 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국방부, 육군에 책임 떠넘기기

여야 의원들은 군 당국의 사망사건 은폐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휘 계통을 통해 제대로 보고됐는지, 쉬쉬하고 덮으려 한 건 아닌지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고, 책임질 사람은 모두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당시 국방장관인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을 문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은 사건 직후인 4월8일 군 수사기관으로부터 윤 상병이 선임병 폭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10년 만에 발생한 구타 사망사고에 대해 군 수뇌부에게 군기강을 확립하라고 수차례 지시했다”며 “그 뒤로는 일절 육군으로부터 가래침 핥기, 성기 고문 등에 대한 수사상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가 육군의 보고 소홀을 지적하면서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이란 지적이다.

◆사단장 해임 불구 “수뇌부 책임져라”

김흥식 육군 법무실장(준장)은 국회 현안보고에서 가해자에게 상해치사죄가 적용된 것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이 그와 같은 여론(살인죄 적용)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며 공소장 변경 가능성을 열어뒀다.한 장관은 대국민 사과에서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철저히 진상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며 “육군 28사단장을 보직해임했다”고 말했다. 또 6일 전·현직 군인과 군사전문가, 시민단체회원 등 70여명이 참여하는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민간 위원으로 육군 홍보대사인 중견 탤런트도 참여할 예정이어서 전문성 부족에 대한 논란이 일 전망이다.

◆또 다른 가혹행위 발생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6사단의 한 의무부대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여 6개월간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지난 5월 전역한 가해자 2명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고 이날 밝혔다. 인권위는 보통 성추행 등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사건은 공개하지 않지만 피해자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뒤늦게 사건을 발표했다.인권위에 따르면 군인권센터 등은 지난해 8월 “6사단 의무병으로 근무하던 A이병(21)이 2012년 10월 의무중대 전입 후 6개월간 선임병들로부터 폭언과 폭행, 가혹행위, 성추행을 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조사 결과 이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A이병은 이 때문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