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법과 사법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콩 생산농민들이 “콩을 팔 데도 없고 가격까지 급락해 죽을 맛”이라며 시위하던 게 엊그제 같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후 영세 두부 제조업체들이 값싼 수입콩만 찾는 바람에 직격탄을 맞았던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동반성장위에 두부 품목은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 이른바 ‘동반몰락’의 비극이었다.

막걸리의 몰락 소식도 씁쓸하다. 한때 생산라인을 밤새 가동하던 업체들이 지금은 빈사상태다. 덩치 큰 회사들의 접근을 막으면 상황이 더 좋아질 것 같았는데 결과는 반대였다. 해외시장 개척은 꿈도 못 꾸었다. 결국 생산량이 3년 전의 10분의 1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시장에 간섭하는 순간 자생적 질서는 흐트러지고 만다.사법(私法)의 영역을 공법(公法)으로 바꾸거나 사적 계약을 정부 입맛에 맞게 왜곡시키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이 그렇게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는 암덩어리 규제의 본질이다. 대기업 입찰을 금지한 공항 면세점은 해외 유명 업체들이 차지했다. LED조명 시장도 필립스와 오스람 같은 외국 기업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자고나면 규제법이 뚝딱 만들어진다. 연도별 규제입법 수는 2007년 5114건에서 2009년 1만2900여건으로 늘었다. 2011년에는 1만4082건, 2013년엔 1만5269건이나 양산됐다.

교묘한 규제일수록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 속에서 기업들은 아우성을 친다. 사법의 공법화 현상이 심해지면 우리나라 회사법제가 국제사회의 조롱을 받고 고립될 수도 있다. 외국의 직접투자가 불가능해져 자본시장이 더욱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공·사법을 구분하지 못하는 의원들은 민사로 해결할 문제까지 형사 범죄화한다. 처벌 수위까지 세세하게 입법화한다. 업무상 횡령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법의 공법화 현상이다. 사법부의 권한을 입법부가 미리 규정하는 것은 입법 과잉이요 권한 남용이다. 삼권분립 원칙은 어디 가고 사법과 행정에 대한 입법만능의 불균형이 판친다.

공리주의와 ‘어버이 국가론’을 주창한 제러미 벤담은 “별을 따려고 손을 뻗는 사람은 자기 발밑의 꽃을 잊어버린다”는 말을 남겼다. 이 멋진 명구는 훗날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갔다. 하이에크가 일깨워준 ‘시장의 자생적 질서’라는 꽃을 잊어버리고 국가간섭주의의 별만 따려 했던 게 그였으니까. 죽기 이틀 전까지 자신의 대중주의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걸 보고 만족해했던 그는 아직 우리 곁에 살아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