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강성욱 GE코리아 사장 "실적 못내면 잘리는 CEO를 19년째 하고 있으니 운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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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시죠? 그 運은 리스크를 피하면 절대 안 옵니다"#1. 1990년,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탠덤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9세 한국인 직원 강성욱을 홍콩으로 파견했다. 홍콩 조직이 수익을 내지 못하니 일부만 남기고 정리(구조조정)하라는 지시였다. 그런데 강씨는 홍콩에서 탠덤 서비스를 받는 기업고객을 여럿 만난 뒤 다른 궁리를 했다.
CEO 오피스
'깜짝 실적'에 회계감사 받기도
외환위기 몸으로 부딪힌 컴팩 CEO 시절
환손실 상쇄할 수익 내자 本社가 놀라
한번 물면 안놓는 '핏불테리어 정신'
이멜트 GE회장에게도 "매출 2배이상 늘리겠다" 장담
이랬다저랬다하면 리더 자격 없어
목표 일관돼야 생각 다른 직원은 떠나
결국엔 더 강한 조직으로 뭉쳐
그가 미국 본사에 올린 보고서는 ‘고객 의견을 들어보니 충분히 흑자를 낼 수 있는 비즈니스인 만큼 시간을 주면 살려보겠다’는 내용이었다. 구조조정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다. 그가 여러 차례 정상화 근거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자 본사에서 두 손을 들었다. ‘살리지 못하면 네가 1순위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8개월 만에 탠덤의 홍콩 비즈니스는 수익을 내는 조직으로 거듭났다.#2. 1998년, 외환위기로 아시아 국가들이 몸살을 앓고 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탠덤과 컴팩, 디지털이라는 미국계 IT 회사 3개가 합병한 가운데 구조조정 압박이 내려왔다.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입장에서 환율이 두 배로 뛰어 가격경쟁력이 반 토막 났는데 “전년도 목표치 기준으로 분기별 매출을 맞춰라. 그렇지 못하면 정리해고에 들어가겠다”는 지시였다. 3사 합병법인인 한국컴팩 대표를 맡고 있던 강씨는 매출 숫자를 맞춰서 정리해고를 피하기로 결심했다. 4분기에 매출을 맞췄다.
본사에선 ‘비현실적인 수치를 맞춘 것은 회계조작이 아니냐’며 감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다음 분기, 또 다음 분기에도 매출 목표를 달성했다. 본사는 정리해고 계획을 포기했다. 외환위기 전 한국컴팩의 시장점유율은 미미했으나 위기가 끝났을 때는 업계 3위로 뛰어올랐다.
◆“리스크 피하지 말아야 운이 따른다”강성욱 GE코리아 총괄 사장(53)은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눈이 크고 대체로 둥그런 이미지여서 성격이 온화할 것 같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는 “남들은 착해 보인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고 했다. 구조조정 지시를 거부한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고집이 세고 배짱이 두둑한 편이다.
강 사장은 이른바 ‘직업이 최고경영자(CEO)’인 사람이다. 탠덤컴퓨터 동아시아 총괄 대표를 맡았던 것부터 치면 19년째 CEO 직함을 지키고 있다. 비결을 물으면 “운이 참 좋았다”고 답한다.
꼭 겸손해서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 그는 “(순전히 우연한 산물인) 횡재와 (준비했지만 결과를 자신할 수 없을 때 필요한) 운은 다르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운은 리스크를 어느 정도 감당하면서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잘 안될 수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용기를 내야 하고, 그래서 그 결과가 좋을 때 ‘운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그가 30대 중반에 CEO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홍콩 조직의 흑자전환(턴어라운드) 가능성을 발견하고 상사 지시에 반기를 드는 모험을 감행한 덕분이었다. 이후 글로벌 IT 기업 사이에서 ‘강성욱’의 이름을 날리게 만든 것도 외환위기 때 한국컴팩을 삼성·LG전자에 이어 업계 3위로 키워낸 그의 승부사 기질이 시장에서 통했기 때문이다.
강 사장은 “1999년부터 IT 버블이 커지고 환율도 낮아져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을 봤다”고 했지만, 그즈음부터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데 탁월한 수완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미국 본사에서 그는 ‘영웅’이었다. “HP와 컴팩이 합병을 결정하는 바람에 무산됐지만 한때는 한국컴팩이 국내 재벌기업 인수를 검토했을 정도”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글로벌 기업, 한국 주목하게 만들 것”강 사장은 이후 시스코시스템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을 거쳐 2012년 GE코리아 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회사를 거치며 그는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글로벌 기업 본사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스코시스템스에 근무하던 2009년에는 극심한 재정난에 빠진 두바이를 대체할 대규모 IT 프로젝트를 찾던 시스코에 한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해 존 체임버스 회장과 국무총리 간 면담을 성사시켜 인천 송도를 첨단 IT도시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시스코가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10월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한국을 찾았을 때 “이 비행기에서 내려 당신이 밟게 되는 땅마다 ‘돈을 벌 기회’가 무진장 깔려 있다”며 농담을 건넸다. “앞으로 3~4년 내 GE코리아 매출을 2~2.5배까지 늘리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가 GE코리아 대표를 맡은 뒤 GE 본사에선 한국의 시장 가치를 종전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멜트 회장에 이어 존 라이스 부회장이 수차례 방한한 이유다. 강 사장은 “글로벌 기업들은 그간 중동·호주 등에 비해 한국 시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선진국에 진입하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 진짜 사업 기회가 많다는 점을 강조하면 글로벌 기업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더가 일관성·투명성 있어야”
강 사장이 직원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상대를 한번 물면 놔주지 않는 ‘핏불 테리어 정신’이다. 그는 밀어붙이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도 직원들에겐 인기가 좋다. 그의 생일이던 지난 25일 직원들이 떡, 사과 등을 준비해 파티를 열어줬다.
직원의 지지를 얻는 가장 큰 이유는 ‘일관성’이다. 조직의 목표를 한번 제시하면 논리적인 근거 없이 이를 바꾸지 않는다. 강 사장은 “리더가 단기적 이익만 생각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면 직원의 지지를 얻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리더가 일관된 목표를 제시하면 이에 맞출 수 있는 직원은 맞출 것이고 생각이 다른 직원은 결국 떠날 것이니, 궁극적으로 조직이 뭉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GE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 직원에게 이유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직접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고, 이메일을 쓰는 일도 잦다. 강 사장은 “리더는 투명해야 한다”며 “모든 결정에 대해 다 이해를 구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최소한의 노력 여부가 직원과의 의사소통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강성욱 CEO 프로필△1961 년 서울 출생 △서울 고려고 졸업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4) △한국IBM 입사(1985) △미국 MIT 경영대학원 석사(1990) △탠덤컴퓨터 동아시아 총괄대표(1996~1997) △컴팩코리아 사장(1998~2001) △한국HP 엔터프라이즈시스템 담당 사장(2002) △시스코시스템스 아·태지역 부사장(2002~2005) △시스코시스템스 아·태지역 기업·커머셜사업 사장(2006~2011) △GE코리아 총괄사장(2012~)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