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의 힘·생활의 발견…'세상에 없던 家電'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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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습격사건엄영훈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부사장)이 2012년 미국 뉴욕 출장길에 프렌치 레스토랑 르 베르나르뎅에서 중요 거래처와 식사를 할 때였다. 미슐랭 3스타 등급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그 식당에선 스파클링 워터(탄산수)를 생수 대신 제공하고 있었다. 별 생각없이 한모금 들이켰는데, 청량감이 남달랐다. 물을 유심히 살폈더니, 최고급 스파클링 와인처럼 미세한 기포가 10여분이 지나도록 끊임없이 올라왔다.엄 부사장은 염치 없이 주방장을 찾아 ‘주방을 한번 볼 수 없겠냐’고 통사정했다. 처음엔 거절하던 주방장은 간곡한 요청에 못이긴 듯 결국 문을 열어줬고, 그곳에선 탄산수를 직접 만들고 있었다.
뉴욕 출장서 탄산수 맛본 뒤 비결 알아보려 주방 찾아가
사장님 댁 청소기는 9개
9가지 바꿔가며 개선점 연구…개발제품 직접 집에서 테스트
엄 부사장은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최고의 탄산수 제조기 회사를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소다스트림을 찾아냈다. 삼성은 이 회사와 재빨리 기술제휴를 맺었다. 그렇게 개발한 제품이 지난해 내놓은 세계 최초의 ‘스파클링 냉장고’로, 냉장고에 탄산수 제조기를 설치한 제품이다. 엄 부사장은 “미국에서 먼저 제품을 출시했는데 워낙 반응이 좋아 한국시장에도 내놓고 있다”며 “특허를 우리가 등록해놔 다른 회사는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전 업계에서는 최고경영진의 이런저런 경험이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워낙 제품에 대해 전문지식이 많은 데다, 항상 ‘뭘 개발할까’만 생각하고 살다 보니 뭘 보더라도 신제품과 연결시키려 한다”는 설명이다.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도 자신의 체험을 제품에 접목해 히트작을 여럿 만들어냈다. 최근 나온 ‘코드리스 진공청소기’가 대표적이다. 조 사장은 아홉 종류나 되는 청소기를 매일 집에서 써보며 머리카락이나 전선이 엉키는 불편을 직접 체험했다. LG전자 청소기 개발팀은 제품을 완성하고도 조 사장의 ‘가정집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제품 출시를 미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LG 세탁기의 ‘스마트 진단’ 기능도 조 사장의 아이디어였다.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고장을 진단할 수 있는 기능이다. 1976년 입사 이래 30년 넘게 세탁기만 만들어 온 조 사장은 소리만 듣고도 어디가 고장났는지를 한번에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원격으로도 소리만 듣고 고장을 진단한다면 불필요한 가정 방문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발한 것이 스마트 진단 기능이다.옷을 걸어놓으면 주름이 펴지고 냄새가 없어지는 ‘LG트롬 스타일러’는 조 사장 부인의 작품이다. 조 사장이 중남미 출장을 갔을 때였다. 워낙 옷을 가방에 오래 넣어놔 구김이 심하게 졌는데 호텔엔 다리미가 없었다. 다급한 나머지 부인에게 전화했더니 “화장실에 뜨거운 물을 틀고 수증기가 꽉 차면 옷을 걸어놓으라”는 답이 돌아왔다. 옷이 수분을 흡수하고 마르는 과정에서 주름이 펴진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제품에 적용한 것이 스타일러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