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주하 농협은행장 "소 팔아 서울서 공부해 입사했는데 왜 시골만…농협회장에게 편지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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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변두리 경험이 은행장 오른 '밑거름'"연초 1억여건의 카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농협카드에서도 2000여만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농협도 이제 안 되겠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왔다. 김주하 농협은행장(59)이 취임한 지 1주일 만의 일이었다. 김 행장 역시 ‘이제 다 죽는가보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기획의 달인
역사책에 빠져 산 덕분에 기획의 핵심인 '넓은 시야' 갖춰
여러 나라와 시대 읽다보니 짜임새 있는 눈·예측력 생겨
소통의 리더
읽는 사람·듣는 사람 입장에서 쓰고 말하는 습관 몸에 배
못한 직원도 노력 인정해주며 더 큰 잠재력 이끌어 내
그로부터 8개월여가 지난 지금 농협은행은 우려와 정반대되는 성과로 금융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수신 여신 방카슈랑스 수익증권 등 주요 영업부문의 성장률이 은행권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천수답’으로 유명한 농협의 경영이 ‘수리답’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1만8000여명 임직원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열심히 뛴 덕분”이라는 게 김 행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뛰게 만든 김 행장의 리더십을 얘기하는 농협은행 임직원이 많다. 그는 어떻게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25년 단골이라는 서울 서대문 사거리 ‘서대문족발’에서 김 행장을 만났다.
○막내아들에게 지게를 못지게 한 어머니
총자산이 204조원에 달하는 농협은행 수장인 그의 고향은 읍내까지 버스가 하루 두 대밖에 없던 예천(당시 풍기) 산골짜기다. ‘서대문족발’은 그런 그를 닮은 소박한 식당이다. 족발 한 쌈에 막걸리를 들이켠 김 행장이 어릴 적 얘기를 풀어냈다.김 행장의 아버지는 평범한 시골 농군이었지만 어머니는 양반집 규수였다. “집안이 몰락한 탓에 산골짜기로 시집온 어머니가 처녀 때 필사한 책들이 집안에 한가득했죠. 어린 저에게 늘 책을 읽으라 하셨죠. 부농도 아닌데 막내아들인 제게 지게를 절대 못 메게 하셨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더 큰 일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습니다.”
그 덕분인지 유년시절 그는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시골학교였지만 초·중·고 12년을 내리 반장을 했다.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안돼 읍내의 대창중, 대창고로 진학했어요. 그때는 제가 정말 똑똑한 줄 알고 건방을 떨다 보니 공부를 등한시하게 되더군요. ”
머리만 믿고 공부를 게을리한 결과는 대학 낙방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진 직후 낙담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안병욱 숭실대 교수(지난해 별세)의 강연을 들었다. “촌놈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명강의였지요. 감명을 받아 안 교수님이 계신 학교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그렇게 숭실대 법학과로 진학했지만 대학 시절은 어영부영했다. 큰 꿈과 많은 생각에 비해 현실이 초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시 공부는 흉내만 내고 막걸리 마시러 다니는 게 일과였다. “그래도 과외를 하다 당시 여고 2학년이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으니 대학생활은 나름 성공한 셈이지요.”
○‘빽’도 줄도 없어 여신업무만 했지만…
족발에 이어 따끈한 두부김치가 나왔다. 한 젓가락 맛본 김 행장이 말을 이었다. “대학 시절 특별한 목표는 없었어요. 대기업이나 은행 입사 시험을 치려고 했어요. 법학을 공부했으니 농협중앙회가 좋겠다 싶었습니다.”명문대생들과의 24 대 1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1981년 초임 발령지는 강원 양구였다. “어릴 때 몸이 약했고 편식도 심했어요. 그런데 감자는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더군요. 양구로 발령받은 게 운명이다 싶었습니다.” 양구농협은 군납 업무가 첫째, 둘째는 양곡이었다. “같이 간 장교 출신의 동기 두 명은 각각 군납과 양곡을 맡았죠. 저는 방위 출신이어서인지 덜 중요했던 예금과 대부 업무를 봤습니다.”
1년 뒤 동기들은 서울로 갔지만 그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양구에서 2년을 일하고 다시 발령이 났는데 이번엔 경기 이천이었어요.”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당시 농협중앙회장에게 편지를 썼다. 소까지 팔아 서울에서 공부하고 입사를 했으니 중요한 일을 맡기면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운이 좋았던지 그는 4년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은 더 만만치 않았다.
“자재부 양곡부 같은 힘깨나 쓰는 부서장들은 저를 외면하더군요. 대신 당시 힘은 없고 책임만 큰 여신 부서로 돌았습니다.” 시골 촌놈에다 학벌이 그저 그래서인지 끌어 주는 사람이 없어 여신업무만 총 14년을 맡았다.
○‘기획의 달인’ 만들어 준 역사 공부
“처음 발령받아 간 부서에서는 항상 설움부터 당했습니다. 명문대 출신 부장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어느 부서에 가든 근무 한 달쯤 지나고부터는 인정을 받았다. 탁월한 기획력 덕분이었다.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넓은 시야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알면 됩니다. 내가 작성한 문서를 누가 읽는지, 내 얘기를 누가 듣는지, 내가 만든 상품이 누구에게 팔리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삼국지를 비롯해 많은 책을 읽은 게 도움이 됐다. 그는 지금도 역사책에 빠져 있다. “여러 시대, 여러 나라의 역사를 읽다 보면 서로 연결되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짜임새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죠. 기획에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짜임새입니다. 또 1000년 전과 500년 전, 50년 전과 10년 전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깨침이 미래를 예측하는 ‘기획’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가 부장이 되고부터 항상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넓은 시야다. “1주일에 한 번은 팀원과, 한 달에 한 번은 다른 팀원과, 두 달에 한 번은 다른 부서와 만날 것을 주문합니다. 자기 업무에만 매몰되면 시야를 넓히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는 근면왕
김 행장의 가장 큰 장점은 근면함이다. 새벽 3시30분이면 눈을 뜬다.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했지만 언제나 자명종 소리를 듣지 않고 혼자 일어났습니다.”
요즘은 일어나자마자 조간신문을 집어들고 뉴스를 챙긴다. 그 후엔 역사 공부를 한다. 새벽 5시께면 집을 나선다. 출근이 아니라 집 근처에서 ‘속보(速步)’를 한다. 집 근처 홍제천과 인왕산을 주로 찾는다.
이렇게 매일 한 시간여 동안 6~7㎞를 걸으며 하루 일과를 구상한다.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 등을 떠올리며 일정을 챙기는 것이다. 어지간한 고민도 걸으면서 대부분 해법을 구체화한다.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그의 ‘새벽 기상’은 어김없다.
이런 습관은 사람들과의 만남에도 적용된다. 시간 약속을 칼같이 지킨다. “평생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제 시간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출퇴근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는 것이 아까워 농협 충정로 본사에서 멀리 떨어져 살지도 않는다.
○“선후배, 동료들에게 인정받으면 누구나 리더된다”
그가 회사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금융통’으로 인정받으면서다. 빽도 줄도 없어 핵심이던 경제사업 업무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정통 금융맨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은행장이 됐냐고요? 저는 내세울 게 선후배와 동료들의 인정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정만으로 은행장이 되더군요.”
그가 수장이 된 후 농협은행은 달라지고 있다. 예수금은 올 들어 7월까지 11조7000억원 늘었다. 은행권 1위다. 같은 기간 대출(6조3000억원), 펀드수탁액(1조1000억원), 방카슈랑스 판매수수료(5560억원) 증가액도 가장 많다. 카드 사태 이후 ‘우리도 무너질 수 있겠구나’라는 절박함이 농협은행에는 전화위복이 됐다.
그 과정에서 김 행장은 직원들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잠재력을 끌어내며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는 실적이 좋은 지점과 부서에는 차장, 과장급 직원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한다. 실적이 나쁜 직원들도 챙긴다. ‘열심히 한 걸 잘 알고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건 왜일까’라며 다독이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간의 성과를 통해 직원들은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금융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 시작됐고, 농협의 더 큰 미래도 막 출발했습니다.”
■ 작곡도 해내는 다재다능…리코더로 연수원歌 작곡
‘생명 창고 지키는 농민의 자손… (중략) 미래는 우리 것 충남연수원 …(후략)’
김주하 농협은행장이 1996년 작사·작곡한 농협 충남연수원의 연수원가 가사 일부다. 그가 1996년 충남연수원 부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연수원가가 없어 직접 지었다고 한다. 물론 음악적 재능이 있어서다. 어렸을 적 불던 리코더를 이용해 작곡을 했다. 그의 리코더 실력은 수준급으로 알려졌다. 그는 연수원 입교식 때 직접 지휘까지 했다.■ 김주하 행장의 단골집 서대문족발
마늘·약재 우려낸 육수에 생족 매일 여섯 번 삶아
서대문족발은 손장규 씨가 장모와 함께 36년간 이어오고 있는 식당이다. 마늘·양파·멸치·약재 등을 우려낸 육수에 냉동족이 아닌 생족을 매일 여섯 번씩 삶아 내놓는다.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조합이 이 집의 노하우다.
족발에 어울리는 겉절이 김치도 매일 담가 손님에게 내놓는다. 빈대떡 등 다른 메뉴 또한 주문이 들어온 뒤 반죽을 시작해 부친다. 음식이 늦게 나온다는 불평을 듣더라도 절대 미리 만들어놓지 않는 게 서대문족발의 원칙이다.
대표 메뉴인 족발(3만3000원)과 빈대떡(6000원)을 비롯해 도토리묵과 두부김치(각 1만2000원), 홍어무침과 주꾸미볶음(2만원)을 곁들일 수 있다. 점심메뉴로는 비빔밥, 칼국수, 수제비(각 6000원) 그리고 잔치국수(5000원)를 내놓는다.
영업시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30분~밤 11시30분이다. 일요일과 추석·설 연휴는 쉬며 다른 법정공휴일에는 영업한다.
서울 5호선 서대문역 7번 출구로 나와 서대문경찰서를 끼고 우회전하면 골목 초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 김주하 행장▷1955년 경북 예천 출생 ▷1974년 대창고,1979년 숭실대 법학과 졸업 ▷1981년 양구농협 발령 ▷2004년 남대문기업금융지점장 ▷2006년 금융기획부 부부장 ▷2008년 부천시지부장 ▷2009년 금융기획부장 ▷2010년 심사부장 ▷2012년 농협금융지주 부사장 ▷2014년 농협은행장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