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따뜻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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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거리 던져 준 사물인터넷우리가 추석 연휴로 보낸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가전박람회(IFA)가 열렸다. 47개국 1500개 기업이 전시에 참여했고 24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현장에서 체결된 계약액이 40억유로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돈으로 5조3000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과학을 바로 쓰는 건 결국 인간
강성모 < KAIST 총장 president@kaist.ac.kr >
흔한 TV나 냉장고를 만드는 기술이 그 큰 금액으로 거래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보는 것은 인류의 미래다. 첨단 기술의 정수만을 뽑아내 우리 눈앞에 현실로 보인 것이다. 그 진일보한 기술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스마트 홈’으로 구현된 사물인터넷 기술이다.예를 들자면 당신이 퇴근 후에 빈집의 문을 열었는데 거실 조명이 켜져 있다. 에어컨이 미리 가동돼 있어 실내 온도도 쾌적하다. 밥솥에서는 취사완료 알림이 들려온다.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이 아니다. ‘집’이 당신 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똑똑하게 주인을 맞이하는 것이다. 화재나 침수, 외부의 침입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집은 알아서 대처할 것이다. 버튼을 눌러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자메시지나 음성으로 명령을 전달하고, 심지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기계가 알아서 주인의 취향대로 움직여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인류의 더 나은 삶’을 목표로 삼는다. ‘더 나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세상을 파괴하거나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기 위해 일생을 바쳐가며 연구와 실험에 매달리는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이끌어가는 미래 사회에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기술이 인간다움을 고갈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마하트마 간디는 ‘인간성 없는 과학’을 일곱 가지 사회악 중에 하나로 꼽았다. 연구자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과학기술 윤리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기술은 그저 기술일 뿐이다. 이것을 활용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과학의 이성이 아닌 인간의 감성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과학’을 자주 이야기한다.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높아지는 미래를 꿈꾼다.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모두 이 사실을 잊지 않을 때, 고독하고 소외된 ‘스마트 홈’이 아닌 편리하고 안락한 ‘스위트(sweet) 스마트 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강성모 < KAIST 총장 president@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