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 없는 얘기, 사진으로 말하다

10월 1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등서 사진비엔날레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유럽 작가 250여명 총출동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중국 작가 보무의 ‘The Figure Die Away-Ⅰ, No.1’을 감상하고 있다. 김인선 기자
“저 사람, 여자야 남자야?” “치마를 입었으니 여자구먼.” “에이, 남자 거시기가 있는데….”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개막 첫날인 지난 12일 대구 성당동 대구문화예술회관 1층. 중년 관객 대여섯 명이 사진작가 시게유키 기하라(뉴질랜드)의 작품 앞에서 남녀 논란을 벌였다.논란의 대상이 된 ‘여성의 방식으로(Fa’afafine·2004)’는 아름다운 원주민 여성이 같은 포즈로 앉아 있는 사진 세 장을 나란히 걸어놓은 작품이다. 그런데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왼쪽 사진에선 치마를 입고 있고, 가운데 사진에선 벌거벗은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기괴하다. 벌거벗은 여인의 몸에 남성의 성기가 달려 있다.

작가는 관객에게 묻는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제3의 성을 성도착자로 분류하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는 온당한가.’ 작품의 제목이 된 파파피네는 작가의 고향인 남태평양 사모아에서 제3의 성을 지닌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다다섯 번째인 올해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주제는 ‘포토그래픽 내러티브’. 다음달 1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예술발전소, 봉산문화회관 등에서 열린다. 주 전시인 ‘기원, 기억, 패러디’와 일반 전시인 ‘이탈리아 현대사진전’ ‘전쟁 속의 여성’ ‘만월: 하늘과 땅의 이야기’ 등에 31개국 작가 250여명의 작품을 걸었다.

주 전시의 기획을 맡은 스페인의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 예술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평상시 들을 수 없는 의견, 관점, 문화를 보다 다층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주 전시에는 한 명을 제외하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출신 작가들이 참여했다.

주 전시장에서 관객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작품은 브라질 작가 안젤리카 다스의 ‘휴마네(사람)’다.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하다.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이들의 초상화를 마치 색깔 견본집처럼 일렬로 붙여 놓았다. 초상화의 배경은 사진 속 주인공의 얼굴에서 추출한 11X11픽셀의 견본과 정확히 일치하는 색을 선택해 포토샵으로 채워 넣었다. 작가는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이 많은 사람들을 흰색 검은색 노란색 붉은색 등 네 개의 색깔로만 구분할 수 있다고 보는가?’○역사책의 뒷장을 열어보다

주 전시가 완곡어법을 쓰고 있다면 수창동에 있는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열리는 일반 전시 ‘전쟁 속의 여성’전은 직설화법을 택했다. 대구미래대 교수인 석재현 감독이 기획한 이 전시에는 한국 미국 중국 대만 프랑스 등 8개국 작가 18명이 참여했다. 자의든 타의든 전쟁에 직접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여성 종군기자의 눈에 비친 전쟁의 모습,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영희가 찍은 박옥년 할머니의 사진이 뇌리에 오래 남는다. 깊게 패인 주름, 젖은 눈가, 꾹 다문 입술 안에 분노와 상처가 절절히 들어 있다. 석 감독은 “전쟁과 여성의 비극적 역학관계, 전쟁의 참혹함, 평화의 의미를 돌아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