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원, "가리봉동 쪽방촌부터 시작…이제는 루이까또즈 지갑 50% 공급"

산업단지, 혁신의 현장 26년…고급 지갑·핸드백 제조 한우물 '에이원'

10대 후반 구로공단 조수로 시작
봉제·재단 최고 기술자 꿈

엄격한 생산관리·품질조사
불량률 1% 이하로 낮춰

주문자 생산업체지만
디자인실서 다양한 제품개발
거래처에 디자인 제언도

해외처럼 기능인력 대접받고
협력업체와 상생하고 싶어
김태주 에이원 사장(오른쪽)이 구로동 본사에서 직원과 루이까또즈 핸드백의 품질 관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세계적인 패션 액세서리 브랜드 ‘루이까또즈’의 지갑, 핸드백 등을 만드는 에이원(A-ONE)의 김태주 사장은 가리봉동 쪽방촌에서 살며 잡화공장에서 일을 배웠다. 그러면서 기업가의 꿈을 키워왔고 마침내 이룩했다.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루이까또즈’는 원래 프랑스 브랜드다. 이를 국내 기업인 태진인터내셔날(회장 전용준)이 2006년 인수했다. 고급 지갑, 핸드백 등이 주종 품목이고 국내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에서 팔고 있다. 이 브랜드의 본고장인 프랑스 등 외국에도 몇몇 매장이 있다.
에이원 디자인실에서 직원들이 신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 루이까또즈 매장에서 팔리는 지갑의 절반가량은 구로동에 있는 에이원이 만든다. 김태주 에이원 사장은 “루이까또즈 지갑의 약 50%, 핸드백은 7~10%가량을 우리가 생산한다”고 말했다.

루이까또즈는 고품질을 지향하는 브랜드다. 김 사장은 “가격은 외국 유명 브랜드 제품에 비해 저렴하지만 품질만큼은 이들 못지않은 고급 브랜드”라고 말했다.김 사장의 롤모델은 바로 전용준 회장이다. 전 회장은 루이까또즈 브랜드 제품을 수입해 팔다가 아예 사들였다. 그는 한눈 팔지 않고 사업에만 몰두할 뿐 아니라 품질을 무척 중시한다. 김 사장은 이런 전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그대로 배워서 경영에 접목시키고 있다.

서울 구로디지털밸리 이엔씨벤처드림타워에 있는 에이원에 들어서면 지갑과 핸드백을 디자인하고 품질검사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 회사는 단순히 주문자상표로 생산(OEM)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디자인해서 공급(ODM)하기도 한다.

김 사장은 “품질 검사를 철저히 하지만 그에 앞서 생산을 꼼꼼하게 관리한다”며 “그러다보니 일반적인 지갑 핸드백류의 불량률이 3% 선인 데 비해 우리 제품은 1% 이하에 머물 정도”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이 회사는 루이까또즈의 주요 생산업체가 됐을까.첫째, 김 사장이 26년간 동종업계에 종사하며 쌓은 숙련기술이다. 황금곰솔로 알려진 충남 삽시도 출신인 그는 이 섬에서 초등학교, 바다 건너 대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했다. 1980년대 후반 구로공단, 동대문 등지의 봉제공장에서 ‘시다(조수)’로 일하면서 봉제와 재단 등을 배웠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방송통신고를 다니며 조금씩 풀었다.

그는 봉제와 재단일을 배우면서 꿈을 갖게 됐다.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 ‘앞으로 10년 안에 내 공장을 갖겠다’는 꿈을 갖고 일을 하니 훨씬 숙련도가 높아졌다. 나중에는 동종 업계 기술자에 비해 훨씬 많은 보수를 받게 됐다. 자신은 쪽방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다.

그가 거쳐간 동네는 동대문 화곡동 천호동 등 여러 곳이다. 이는 나중에 협력업체를 확보하는 데 큰 자산이 됐다. 어느 동네 어떤 공장이 재단을 잘 하는지, 누가 봉제의 달인인지, 주말에도 반갑게 일을 맡아서 해주는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알게 됐다.1993년 망원동 지하 월세공장을 얻어 친형과 함께 봉제 협력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일감이 격감하면서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2년 대림동에서 에이원을 창업했다. 기능공과 공장 운영 경험을 녹여 다시 도전한 것이다. ‘에이원’은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꿈을 담은 이름이다. 2년 뒤인 2004년 구로디지털밸리로 이전하면서 번듯한 생산시설을 갖게 됐다.

김 사장은 “생산 기반이 잘 갖춰진 곳으로 오니 근로자를 구하기 쉽고, 바이어에게서 신뢰를 받아 주문량이 크게 늘어 성장 기반을 닦게 됐다”고 설명했다.

에이원은 이제 종업원 24명, 지난해 매출 92억원, 협력업체 100개를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협력업체는 바로 김 사장이 일했던 동대문 천호동 화곡동 구로동 대림동 독산동 등에 있다. 자신이 모든 공정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발주처나 협력업체와의 상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

둘째, 엄격한 생산관리와 품질검사다. 지갑은 종류가 단순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죽과 천 등 소재가 다르고 사이즈와 디자인 색상도 천차만별이다. 남성용과 여성용이 또 다르다. 김 사장은 “우리가 만드는 지갑은 수백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일부 공정은 자체 제작하지만 일부 공정은 협력업체를 이용한다. 지갑의 원단 색상 디자인을 세밀하게 살피고 마무리가 잘 됐는지 일일이 검사한다. 그는 사장이자 기술자다.

셋째, 자체 디자인 능력 배양이다. 그는 OEM 업체로만 머물러서는 발전이 없다고 판단했다. 디자인실을 두고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까닭이다. 이를 거래처에 제안한다. 이런 능력이 지속적인 오더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의 꿈은 두 가지다. 우선 기능인력이 대접받는 풍토를 만드는 일이다. 김 사장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재단사 봉제사 등 각 분야의 장인이 사회적으로 높은 대접을 받는다”며 “이런 문화를 가꾸는 데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질 좋은 제품은 장인이 한땀한땀 정성껏 바느질을 하는 데서 탄생한다. 장인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이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또 하나는 협력업체에 일감을 꾸준히 주는 일이다. 요즘 봉제업은 어렵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봉제품이 밀려들면서 국내 봉제 협력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는 협력업체의 일감이 줄어드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과 똑같은 아픔을 느낀다. 그 자신이 협력업체 근로자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에이원이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다짐한다.

‘환경이 좋아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는 전 회장의 지론을 김 사장도 이어받았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협력업체의 작업환경 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더 나은 곳으로 공장을 이전하면 바닥재 등 시설비 일부를 보조해주는 것이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도 영세 중소기업의 열악한 환경 개선에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패션이나 봉제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등 선진국은 고품질 봉제 제품으로 승부를 건다.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제값을 받고 판다. 그는 “공장을 후진국으로 무조건 이전할 게 아니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승부를 걸 수 있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인건비 때문에 중국에 진출했다가 인건비 급등과 ‘중국산=저가품’이라는 등식 때문에 낭패를 겪은 패션업체들도 종종 있다”며 “국내 기업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로 승부를 걸 수 있는 경영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그는 “구로디지털밸리는 일하는 공간으로선 훌륭하지만 근로자들의 휴식과 문화공간이 부족하다”며 “특히 외국 바이어들이 와서 머물고 식사할 수 있는 시설이 적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런 시설을 과감하게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장인 그는 근로자로서 시각도 늘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