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자영업 탈출구를 찾아라] 신촌 '치킨골목' 1년반새 9곳 문닫아…권리금도 5년만에 반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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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m에 24곳 다닥다닥서울 신촌 연세대 앞 연세로11길은 ‘치킨골목’으로 불린다. 160m 길이의 거리에 치킨집 13개가 몰려 있다. 범위를 신촌 현대백화점 유플렉스까지로 넓히면 축구장 3배 크기의 면적(가로 160m×세로 220m)에 24개가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에서 지난 1년6개월 동안 새로 문을 연 치킨가게는 4개. 하지만 9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물어가는 신촌상권에서 말 그대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치킨게임’의 결과다.
"대학가라 잘 될 것" 무작정 개업
서울지역 경쟁강도보다 24배 ↑
하루매출 5년새 220만→100만원
축하받지 못하는 신장개업숫자로도 알 수 있다. 서울의 ㎢당 치킨점 숫자(2011년 말 기준)가 28개라는 점과 비교해보면 경쟁강도가 24.5배나 높다. 이 골목에서 삼통치킨을 운영하는 김영훈 씨는 “2010년 1억5000만원의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넘겨받았을 때만 해도 5곳에 불과하던 치킨집이 4년 새 몇 배가 늘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말 그대로 살인적 경쟁”이라는 말을 거듭 되풀이했다. 인근의 또 다른 치킨집 주인은 “가게 하나가 문을 닫으면 돌아서서 웃고, 새 가게가 들어서면 ‘저기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이 골목에 치킨집이 넘쳐나기 시작한 건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과거 이곳은 대학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롤링스톤 맥주공원 연희식당 화개장터 소금인형 등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호프집과 바, 분식집들이 즐비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 거리의 치킨집은 1992년 문을 연 모아치킨(2007년 폐업)과 둘둘치킨(2010년 폐업) 두 곳뿐이었다. 2000년대 중반 불닭 열풍이 몰아치며 잠시 3~4곳의 불닭집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잠깐이었다.
치킨집 1만2000곳→3만6000곳치킨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부터라고 한다.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실업자와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들이 상대적으로 만만해보이는 치킨집에 눈을 돌린 것. 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국민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이 2000년 6.9㎏에서 2011년 11.4㎏으로 65% 이상 늘었다고 분석했다. 치킨집 수도 2002년(1만2000곳) 이후 매년 9.5%씩 늘어나면서 3만6000곳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71%인 2만5000개가 프랜차이즈 치킨집으로 추산된다.
2011년 말 기준 국내 치킨시장 규모는 3조1000억원으로 지난 10년 새 9.2배 커지긴 했지만 치킨집 창업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과당경쟁은 소득 감소와 줄도산으로 나타났다. 2011년 기준 치킨집을 운영하는 사람의 연평균 순익은 2500만원으로 음식업종 평균 2700만원보다 200만원 낮았다. 반경 500m 이내에 지하철 2호선과 42개의 버스노선(2013년 10월 기준)이 있는 신촌 치킨골목은 유동인구가 많고 접근성도 좋은 곳이다. 매장 규모도 영세 치킨점에 비해 큰 편이다. 하지만 어떤 가게도 ‘치킨게임’의 폐해를 피해갈 수 없다.2억 넘던 권리금, 1억2000만원
치킨골목에서 5년째 가게를 열고 있는 한 치킨집 주인은 “5년 전만 해도 하루 매출이 220만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100만원대로 줄었다”며 “월매출이 6000만~7000만원은 돼야 손해를 보지 않는데 4000만원대에 그치다 보니 폐업이 속출하는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때문에 한때 2억원을 호가하던 권리금은 1억2000만원 안팍으로 내려앉았다.
2009년 3월에 문을 연 롱런치킨은 이름과 달리 불과 5개월 만에 치킨골목을 떠났다. 2012년 1월 간판을 내건 넘버원치킨은 ‘무한리필’을 내세웠는데도 13개월여 만에 손을 들었다. 지난 5월 이후엔 4개월 만에 4곳이 무더기로 폐업을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골목상권으로선 대참사다. 서울시 전체로 따져보더라도 치킨집의 평균 생존기간은 2.7년으로 전체 자영업 평균인 3.4년은 물론 음식점 평균 3.2년보다 짧다. 3년 내 폐업률은 46.8%에 달했다.신촌의 호박공인중개사사무소 장현석 대표는 “대학가라고 해서 무조건 맥주와 치킨이 잘 팔릴 것이라고 판단해 덤벼드는 사람들은 큰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신촌 치킨골목은 과다출혈 경쟁에 내몰린 한국 자영업 시장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정영효/김동현/강진규 기자 hugh@hankyung.com
특별취재팀=조일훈 경제부장(팀장), 조진형·심성미·고은이(경제부), 강창동 유통전문·강진규(생활경제부), 정영효·서기열(증권부), 조미현(중소기업부), 윤희은(지식사회부), 김동현 (건설부동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