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카메라 속으로!'… KAIST,테라헤르츠 굴절 광학렌즈 세계 첫 개발

사막에서 실제로 없는 오아시스나 야자수가 주인공의 눈앞에 나타나는 ‘신기루’ 현상은 지금은 영화의 한 장면에 그치지 않지요. 무더운 여름철이면 TV 카메라가 이를 잡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흔해 빠진 장면이지만 구경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굉장히 먼 거리에 떨어진 자동차를 조영우 경기북과학고 교사가 촬영한 건데요. 이에서 아스팔트 위를 달려오는 자동차가 갓길에 주차한 자동차와 마치 나란히 서 있는 듯이 보입니다.
/신기루 현상=KAIST 제공
이는 물체가 실제 위치가 아닌 곳에서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 신기루 (대기 굴절)에서 비롯하는데요. 지표면 가까운 공기층의 ‘큰’ 온도차로 인한 공기밀도의 변화로 빛이 꺾이기 (굴절)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합니다. 대기의 온도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을 때 하늘하늘한 현상은 아지랑이라고 부릅니다.

이같은 신기루 현상의 원리를 적용한 최첨단 광학 렌즈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습니다. 풀 네임을 쓰면 ‘테라헤르츠파 굴절률 분포형 렌즈’라고 하는데 세계 최초란 타이틀이 달렸습니다. 주인공은 한국과학기술원 KAIST의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기훈, 물리학과 안재욱 교수 연구팀 입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미국물리협회가 발간하는 국제적 권위의 학술지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 Applied Physics Letter’에 9월자 특집 논문으로 실리면서 표지 [제1저자 박상길 박사과정]를 장식했습니다.

KAIST에 따르면 연구팀의 개발품에서 등장하는 용어 가운데 테라헤르츠파 Terahertz Wave는 100G (기가=10∧9)Hz ~ 30T(테라=10∧12)Hz 대역 주파수를 갖는 전자기파를 일컫습니다,

또 굴절률 경사 Gradient Refractive Index는 물질의 굴절률이 공간에서 연속해 달리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밀도 등 차이로 발생하는데 신기루 현상이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빛은 굴절률 경사를 갖는 것을 통과할 때 굴절률이 높은 곳으로 꺾이는 특성을 갖는다고 합니다.KAIST 연구팀이 이번에 처음 개발한 테라헤르츠파 굴절률 분포형 렌즈는 기존 카메라 렌즈를 가공하는데 따른 단점을 극복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기존 렌즈는 실리콘 소재를 곡면으로 가공해 만드는데 비해 이 렌즈의 경우 평평한 실리콘 웨이퍼 소재로 반도체 양산공정으로 제작합니다.

이 차이 덕분에 제작 비용을 10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고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기존 렌즈보다 광원 추출효율이 4배 가량 높다는 게 연구팀의 얘기고요. “이 첨단 렌즈의 쓰임새가 어디냐고요?”

렌즈 이름에 붙은 테라헤르츠파 Terahertz Wave는 가시광선이나 적외선보다 파장이 길어 X선처럼 물체 내부를 높은 해상도로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보안검색 같은 비파괴 검사 도구나 의료용 진단기기에 응용됩니다. 이번 개발로 이들 제품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전망입니다.정기훈 교수는 “테라헤르츠파의 경우 그동안 넓은 대역의 주파수 특성으로 인해 사라지는 (손실) 파장의 비율이 높았다”고 했습니다. 까닭에 이 파장을 효율성 높게 집중시킬 수 있는 광학소자 개발이 과학계의 현안으로 꼽혔습니다.
/테라헤르츠 광굴절 렌즈의 원리
연구팀은 이를 위해 평평한 실리콘에 테라헤르츠파 파장 (약300㎛) 보다 작은 80~120㎛ 크기의 구멍을 반도체 양산방법인 광식각공정으로 제작했습니다. 렌즈 가장자리로 갈수록 홀 사이즈는 크게 설계했고요.

그 뒤 테라헤르츠파를 쬐자 공기와 실리콘 중 공기 비율이 높은 가장자리는 굴절률이 낮았고 상대적으로 공기의 비율이 낮은 가운데는 굴절률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평평한 소재에 공학적인 광학 특성을 접속하는 식으로 설계해 빛을 모으는 볼록렌즈와 같은 기능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정기훈 교수는 이번 연구의 의의로 “자연현상에서 착안해 자연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광학적 특성을 나타내는 ‘메타물질’을 처음 창조한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물질적 제약으로 인해 다양한 광학소자개발이 더딘 테라헤르츠파 기술 진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