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고 전서 기록 "中 요서 지역에 최초의 조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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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처음 세운 날이 개천절이다. 하지만 단군이 언제, 어디서 나라를 세웠는지는 학계의 논란거리다. 특히 고조선 영토에 대해서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요동에 있었다는 설, 평양에 있었다는 설, 요동에서 건국해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심백강 지음 / 바른역사 / 280쪽 / 1만5000원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은 이런 논란에 대해 ‘요서 고조선설’을 주장한다. 저자는 지난 7월 《사고전서 사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에서 낙랑은 대동강 유역이 아니라 현재 중국 허베이성 남쪽 지역, 즉 요서 지역에 있었다는 ‘요서 낙랑설’을 제기했던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이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4군의 하나가 낙랑이므로 ‘요서 조선설’은 ‘요서 낙랑설’의 연장선에 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청나라 조정이 집대성한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 14세기 ‘삼국유사’보다 앞서 기록된 중국 문헌과 1500여년 전에 세워진 중국 선비족의 비문 등에서 고조선 관련 기록을 찾아내 요서 지역에 최초의 조선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찾아낸 기록은 고조선을 1쪽 분량으로 기록한 ‘삼국유사’의 갈증을 풀어줄 사료로 대부분 송대(宋代) 이전의 것들이다.
예를 들면 6세기 인물인 유신(513~581)이 쓴 두로영은의 비문에는 ‘朝鮮建國 孤竹爲君’(조선건국 고죽위군·조선이 나라를 세우고 고죽이 임금이 되었다)이라고 기록돼 있다. 두로영은은 16국 시기 요서 조양(朝陽)에서 전연(前燕)을 건국한 모용황의 후예다. 저자는 “이 비문은 모용황의 행적을 설명하면서 조선이 일찍이 요서 조양 일대, 즉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건국했음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중국 산시성(陝西省) 함양박물관이 소장 중인 이 비석은 선비족인 모용 씨의 기원과 연대기 등을 기록하면서 모용황이 조선공(朝鮮公)에 임명됐던 사실, 낙랑국이 옛 조선이라는 사실 등도 전하고 있다.
1044년 편찬된 송나라의 관찬 병서 ‘무경총요’ 중 ‘북번지리’ 편에는 ‘조선하’라는 강 이름이 나온다. 송의 북쪽 변경이자 요나라의 남쪽 도시인 연경(현 베이징)에서 요나라 수도 중경(현 네이멍구 닝청현)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면서 “조선하(朝鮮河)를 지나 고북구(현 베이징 북동쪽)에 도달한다”고 기록했다. 저자는 ‘조선하’는 현재 허베이성 동쪽을 흐르는 차오허(潮河)이며, 조선(고조선)이 있었던 지역이어서 송나라 때까지 조선하로 불렸다고 설명한다.
또 송나라 학자 낙사(900~1007)가 편찬한 지리지 ‘태평환우기’에는 “노룡현에 조선성이 있다. 조선성은 기자가 봉함을 받은 지역이다”는 기록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노룡현은 현재 허베이성 친황다오(秦皇島)시의 루룽(노룡)현이다.저자는 또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해내경’과 ‘대황경’이 고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기(朝鮮記)’라고 주장한다. 송나라 학자 나필이 ‘노사(路史)’에서 ‘산해경’ 가운데 해내경과 대황경 편은 ‘조선기’라고 했다는 것. ‘해내경’에는 “동해(황해)의 안쪽,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 “조선은 지금의 낙랑군이다” “동쪽에 있어 조일(朝日)이 선명하기에 조선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대동강 중심의 조선은 반쪽의 고조선”이라며 “요서 조선을 통해 웅대한 고조선을 되찾게 됐다”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