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노키아 몰락한 핀란드 景氣 한겨울…"가로등도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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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개 일자리 허공으로지난달 18일 핀란드 헬싱키의 번화가인 중앙역 근처. 퇴근시간인 오후 5시였는데도 거리는 한산했다. 손님 한 사람 없는 상점도 눈에 들어왔다. 회사원인 사리 살미넨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 지 꽤 됐다”고 말했다.
IT벤처 고용 2천명 불과
실업수당 늘며 재정 타격
헬싱키=김재후기자 hu@hankyung.com
핀란드의 한 공영방송은 “지난달 15일부터 오울루(Oulu)시(市)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야간에 가로등을 켜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위도상 해가 빨리 지는 핀란드는 가로등이 필수적이지만 오울루 시정부가 재정 절감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정책이다. 오울루는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던 노키아 공장이 있던 곳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대응하지 못해 노키아가 몰락한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핀란드 경제의 단면들이다. 핀란드의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0.1%에 그쳤다.핀란드 정부는 노키아 휴대폰의 세계 시장점유율이 40% 아래로 떨어질 조짐을 보인 2008년, 창업과 재취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구조로 전환했다. 고용경제부를 신설해 정부·대학·학생·기업을 하나로 묶는 창업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창업 프로그램인 ‘스타트업사우나(Start-Up Sauna)’가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앵그리버드’로 히트를 친 로비오나,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 ‘클래시오브클랜’을 만든 슈퍼셀과 같은 게임회사가 탄생했다.
이렇게 탄생한 게임 및 정보기술(IT) 관련 벤처업체가 고용하는 인원은 핀란드 전체를 다 합쳐도 2000명 수준. 창업 3년 만에 기업가치 3조원으로 성장한 슈퍼셀의 직원은 100명 안팎에 불과하다. 헬싱키에 있는 노키아 연구개발(R&D) 센터를 슈퍼셀이 사들여 본사로 쓰고 있지만 노키아가 창출했던 2만개 일자리는 대체하지 못한 셈이다.
실제 2008년 6.0%였던 핀란드 실업률은 지난 1분기 8.4%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정부가 지출한 실업급여는 41억5000만유로(약 5조5427억원)로 1년 전보다 17.5% 많았다. 정부의 부채비율도 2011년 49.3%에서 올 1분기 58.7%로 높아졌다.정은주 KOTRA 헬싱키무역관장은 “핀란드는 대표적인 복지국가여서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복지비가 많다”며 “세수가 줄거나 부채비율이 조금만 높아져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헬싱키=김재후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