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U턴, J턴, I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폐허 위에서 산업화 기틀을 다지던 1950~60년대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시대였다. 가난에 진저리를 치던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다. ‘무작정 상경’한 농촌 총각과 처녀들이 도시 빈민으로 떠돌기도 했다. 윤흥길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권씨나 이호철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의 길녀 역시 그랬다.

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도시는 팽창했다. 1970년대가 되자 대도시의 급격한 성장 여파로 변두리 지역이 무질서하게 불어나는 이른바 ‘스프롤 현상’이 나타났다. 그 대신 도심에서는 비싼 땅값과 소음, 공해 때문에 밤만 되면 공동화되는 ‘도넛 현상’이 일어났다. 그 연장선에서 1980년대 수도권 일대에는 매초롬한 신도시가 여럿 생겨났다.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은 또 달라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한 직장인들이 농촌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젊어서 학업과 직장을 위해 상경했던 세대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U턴 현상’이 본격화된 것이다. 얼마 뒤엔 ‘J턴 현상’이 뒤따랐다. 글자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고향까지는 아니지만 가까운 중소도시나 전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요즘은 도시 토박이가 농촌으로 이주하는 ‘I턴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도쿄 북서쪽 150㎞에 있는 나가노현이 1980년대 샐러리맨들에게 ‘경치 좋은 우리 고장에 정착해 일해보라’며 붙인 말인데,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하는 동선(動線)이 직선 I자와 같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I턴은 인구가 줄어든 농촌의 지역 특성을 살리면서 젊은 정착민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일본 지자체들이 주택 무료 대여, 교육·의료비 지원 등을 내세우며 지원자를 모집할 정도다. 최근 도쿄에서 열린 상담회에만 1만4000여명이 몰렸다고 한다.

국내 귀농·귀촌 인구도 벌써 10만가구를 넘었다. 2000년의 5.5배다. 전체 농가 중 귀농·귀촌 가구 비중도 2000년 1.4%에서 지난해 9%로 늘었다. 무엇보다 I턴 바람을 타고 젊은 층이 전문화 시대를 열어가는 게 믿음직하다. 정보기술과 농업을 결합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로 온라인쇼핑몰에서 판로를 개척하는 식이다. 무턱대고 뛰어드는 게 아니라 농업 전문지식을 충분히 쌓은 뒤 움직이니 잘 될 수밖에. 전문기관 조사를 봐도 U턴보다 J턴이나 I턴의 성공 확률이 높다. 밑도 끝도 없는 마을발전기금 요구나 막무가내식 시골 텃세는 뜻하지 않은 복병이다. 그걸 넘는 지혜도 필요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