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속 숨어 있는 가치 찾아라
입력
수정
지면D2
경영학 카페지난 한 달간 까다로운 상대와 온갖 줄다리기를 벌이며 복잡한 거래를 진행했다. 계약서에 서명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집에 가기 전 별 다른 생각 없이 계약서를 넘겨보다 어떤 조항에 눈이 간다. 계약 조건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조금 더 조건을 추가하면 서로 이익이 될 수 있었는데 그걸 놓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상대방에게 이 내용을 말하고 다시 협상하자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다 보니 자신이 없다.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계약서를 덮고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한다.
계약 끝났다고 샴페인은 금물
'합의 후 합의'를 시도하라
상대에게 밑져야 본전이라는
인식 분명하게 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당신은 이런 경험이 없었는가. 이미 합의한 내용을 더 좋게 개선할 가능성을 나중에 발견한 적은 없는가. 이런 경우 당연히 상대방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 협상가들은 합의한 내용을 다시 검토하자는 제안을 거의 하지 않는다.제안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이미 맺은 계약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고 상대방이 거래를 취소하자고 요구하는 것처럼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또는 좀 더 일찍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을 내주지 않고 버텼다는 인상을 상대에게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서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도 어떤 노력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미 합의한 내용을 다시 검토하자고 말한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제안이 상대에게 이익이 된다면 상대방도 새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점 또한 명확하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합의를 시도해야만 한다. 이처럼 이미 합의한 내용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버드대의 하워드 라이파 교수는 ‘합의 후 합의(Post-settlement Settlements)’라고 말한다.
상대에게 ‘합의 후 합의’를 제안하려면, 이미 맺은 계약사항보다 새로운 제안이 좋지 않다면 언제든 기존 계약사항을 우선한다는 기본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밑져야 본전일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려야 한다. ‘합의 후 합의’ 제안을 할 때는 양측이 모두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미국의 한 바이오 벤처회사 최고경영자(CEO)는 개발 중인 약품에 대한 권리를 판매하기 위해 한 제약회사와 협상을 벌였다. 5일간의 협상 끝에 합의를 이끌어냈고 계약서에 서명까지 했다. 문제는 계약을 맺은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많은 자금이 들어가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은행 대출은 부담스러워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CEO는 하버드대의 협상교수 디팩 말호트라에게서 ‘합의 후 합의’를 시도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 CEO는 즉시 제약회사에 전화를 걸어 선금을 좀 더 받고 싶다고 말했다. 상대 회사는 그 전화를 받고 크게 놀랐으며, 계약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CEO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선금을 더 받는 대신에 상대방 회사에 현재 계약한 내용에 대해 향후 2년 동안 계약 거부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상대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미 투자한 약품의 개발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고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두 회사는 ‘합의 후 합의’를 통해 서로 더 많은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합의 후 합의’란 양측 모두 수용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거래를 상호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합의 후 합의 기회가 주어질 경우 거래를 상호 개선할 가능성이 75%에 달한다고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리 톰슨 교수는 밝히고 있다.하버드대의 맥스 베저먼 교수는 ‘합의 후 합의’ 성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단계적 제안 방법을 제시한다. 먼저 최초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이뤄낸 진전을 인정하라. 다음으로 거래의 일부 측면을 개선할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상대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지 확인하라. 그리고 나서 이미 모두 양보했지만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면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생각해볼 의사가 있음’을 암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계약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 모두가 기존의 합의보다 개선된 합의를 모색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설득하라는 것이다.
당신도 방금 끝낸 협상을 다시 검토하라.
현재 실행하고 있는 계약이라도 좋다.
이계평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