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0.001초로 시장을 왜곡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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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7
플래시 보이스2009년 여름, 미국 인부 2000여명은 은밀하게 광케이블 매설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일꾼들조차 케이블이 어디를 연결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광케이블은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 있는 데이터센터와 뉴저지주 북부 증권거래소를 연결하는 선이었다. 목적은 ‘빠른 속도’였다. 미국 주식시장의 등락은 시카고 선물시장에 먼저 나타난다. 그렇기에 시카고의 움직임을 감지해 뉴저지의 컴퓨터에 경고를 보낸다면 남들보다 빠르게 매매해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눈 깜짝할 사이보다 짧은 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를 줄이기 위한 작업의 서막이었다.
마이클 루이스 지음ㅣ이제용 옮김ㅣ비즈니스북스ㅣ360쪽│1만6000원
《플래시 보이스》는 ‘극초단타매매(HFT)’ 거래자들이 미국 주식시장을 어떻게 조종하는지 파헤쳤다. HFT는 초고속 통신망과 고성능 컴퓨터를 기반으로 복잡한 알고리즘을 이용해 수백만분의 1초란 짧은 시간 동안 높은 빈도로 매매하는 거래 방식이다.저자는 HFT 트레이더들이 다른 시장 참여자들에 피해를 끼치면서 금융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매매를 중개하는 대형 은행과 초단타매매자들이 결탁해 일반투자자와 기관투자가들을 제물로 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HFT 트레이더들은 승산이 있을 때만 거래하는 방식으로 지난 5년간 단 하루도 손해를 보지 않고 거래했다. 직접 주식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개인연금과 펀드, 주택자금을 관리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이들의 먹잇감이 됐다.
미국에선 올 3월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증권거래위원회와 연방수사국, 뉴욕 검찰이 HFT의 위법성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추리소설처럼 흡인력 있게 읽힌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