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김종학…화끈한 에로아트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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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에 국내 첫 '에로틱 아트 뮤지엄' 문 열어유혹을 머금은 여체의 율동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벌거벗은 여체가 때론 천박한 에로티시즘으로 폄하되지만 누드라는 테마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의 절대적 대상이다. 설악산 풍경과 여체를 초월적인 청초함으로 융합한 원로화가 김종학의 누드화에서는 관능적인 곡선과 울룩불룩한 질감에서 힘을 느낄 수 있다.
국내외 유명 화가 그림·조각·유물 등 1천여점 전시
김 화백의 누드화 등 국내외 유명 작가의 에로틱한 그림만을 모아 보여주는 미술관이 최근 국내 처음 문을 열었다.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촌의 ‘93뮤지엄’ 별관에 있는 200㎡ 규모의 ‘에로틱 아트 뮤지엄’이다. 구삼본 93뮤지엄 관장이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구 관장은 “외설이라는 이름으로 터부시돼온 성(性)을 하나의 예술로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인류의 문명과 함께해온 성문화를 미술품으로 고찰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술관에는 조선 말기 사대부의 성 풍속을 보여주는 그림을 비롯해 명·청 시대 에로틱 토기와 도자기, 일본 에도시대의 춘화, 피카소와 샤갈의 누드 판화, 남녀의 성애를 그린 이왈종의 작품, 국내 최초 기생 사진 등이 전시돼 있어 관람객의 웃음을 자아낸다.미술관에 소개된 각종 유물과 그림, 자료 등 총 1000여점은 미술품 유통 전문가인 구 관장이 1990년대 초부터 모은 개인 수집품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미술반 활동을 했지만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할 수는 없었다. 집안의 반대와 가난 탓에 축산학을 전공했다. 우연히 산 재건축 아파트값이 폭등하자 그는 아파트를 팔아 화랑을 만들고 돈이 생길 때마다 야한 그림을 사들였다. 해외여행 때는 골동품 거리를 찾아다니며 에로틱한 그림을 구입해 들여왔다.
그동안 작품수집 활동을 하면서 겪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나 애환도 많았다. 외설적인 작품들만 모으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남자’라는 오해도 많이 샀다. 공항에서는 특히 여자 세관원들이 가방을 검사하다 남자 성기 목조각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질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시장은 ‘옛사람들의 성’ ‘대가들의 에로틱 걸작’ ‘현대에로틱 아트’ ‘이왈종·안창홍·최경태의 파격 에로틱 코너’ 등 시대와 작가별로 구분해 국내외 성문화에 따른 다양한 작품들로 꾸며졌다. 이 가운데 피카소와 샤갈의 누드화, 무라카미 다카시의 정액 분출 사진, 중국 일본 인도 사람들의 은밀한 성문화 등은 구 관장이 특히 애착을 갖고 있는 전시품이다.‘최경태의 파격 에로틱 코너’로 지정된 공간에서는 2000년 ‘여고생’ 시리즈로 외설 시비에 휘말렸던 최씨의 화끈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프라다 가방이나 휴대폰을 사기 위해 몸을 파는 미성년자의 매춘, 여고생의 성행위를 묘사한 다소 ‘낯 뜨거운’ 작품이 전시돼 있다.
구 관장은 “최근 에로티시즘은 사회·경제·정치적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와 맞물려 금기 대상이라기보다 ‘신성한 놀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며 “에로티시즘만 내세우면 작품이 아닌 ‘장난’에 불과하지만, 이미지에 집착하기보다 진정한 내면을 찾아가다 보면 예술의 극치는 결국 성과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9세 이하는 관람불가, 관람료는 6000원. 매주 월요일은 휴관. (031)948-667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