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 前 일본 총리 "한국, 일본식 장기침체 막으려면 中·日과 경제협력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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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창간 50주년 특별인터뷰“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중·일 경제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아베, 위안부 존재에 사죄하는 마음 가져야
역사·경제 분리 접근해야 韓·日 정상회담 가능
정부가 '인큐베이터'로서 청년 창업 의지 키워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현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 이사장)는 11일 도쿄 나가타초 개인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 창간 50주년 특별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우애’를 여러 차례 거론하며 “3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연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상당한 부를 축적한 명문가 출신이지만 사무실은 의외로 책상과 소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소박했다. 방 한쪽 면은 이명박 전 대통령,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 등 한·중 국가 원수들과 함께한 시절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세월호 사건 후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면서 찾아왔습니다. 일본 정부의 정책 대응도 잘못됐죠. 보다 ‘극적인’ 치료법을 썼더라면 빠르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부가 질질 끌어서 잃어버린 20년으로 이어졌어요. 하지만 세월호 사건 후의 한국의 경기 침체는 일본과 본질이 다릅니다.”
▷왜 그런가요.“한국의 경기 침체는 일시적인 것으로 ‘버블’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장기 저성장의 문제라면, 국가가 발전하면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중국도 지금은 성장률이 높지만 점점 낮아질 것입니다. 안정적인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일본식 장기 침체를 막으려면 하루빨리 경제적인 차원에서 한·중·일 간 협력 수준을 높여가야 합니다. 한·중·일 분업 체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구축해야 합니다.”
▷3국 경제적 분업 체제는 무슨 얘기입니까.
“한·중·일 3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분업적인 공동 번영의 길을 만들 수 있는 관계입니다. 일본은 자본재, 한국은 중간재, 중국은 소비재로 크게 나눠서 서로 성장하는 ‘경제적 연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 지역 내 중국의 군사적 위협도 줄어들 것입니다.”▷하지만 아베 신조 내각 출범 후 외교 마찰은 더 심해졌습니다.
“아베 총리 집권 후 3국 관계가 한순간에 나빠진 것은 일본 쪽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아베 총리의 머릿속에는 ‘역사 수정주의’가 자리 잡고 있죠. ‘지금까지의 전쟁은 결코 잘못된 게 아니다’는 생각입니다. 지난해부터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영향이 컸습니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어떻게 보십니까.“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에는 A급 전범이 합사돼 있어요. 천왕도 야스쿠니 신사는 참배하지 않습니다. 국가 지도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대일강화조약)을 통해 대외적으로 A급 전범들이 저지른 죄를 인정했습니다. 정치 지도자가 전쟁 책임자인 A급 전범을 참배하는 것은 이들의 행위를 용인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변국에 던질 수 있어요.”
▷센카쿠열도, 독도 등 영토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영토 문제는 각자 생각에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사실을 서로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위에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식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서로 사실이란 부분을 역사적으로 좀 더 냉정하고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좀처럼 해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토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적어도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현상’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도 과거 센카쿠에 대해 ‘다나아게(은근히 무시한 채 미룸)’한 측면이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다나아게’가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서로 그러는 동안 무력 충돌을 억제하는 힘이 되죠.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측에서는 더욱 냉정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최종 해결까지 눈에 띄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조금씩 호전될 조짐이 보입니다. 정부 당국자 간 만남도 빈번해졌고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베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역사 인식의 문제는 있지만 경제, 북한 대응 등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분리해 가는 쪽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위안부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역사의 문제와 별개의 시스템을 만들어 논의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대응을 회담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측에서는 당연히 전향적인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트랙’으로 가자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정상회담이 가능합니다.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어요. 나는 종군 위안부가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강제 연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보다 위안부라는 제도가 있었다는 데 대해 사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아베 총리가 이것을 인정하면 이야기는 크게 진전될 수 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의 한정적 허용은 어떻게 봅니까.
“아베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한정적’이라고 하면서 허용하는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당연한 걸 하는 듯이 하고 있죠. 하지만 이것은 일본의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닙니다. 군사적으로 ‘한정적’이라는 것은 확실한 ‘방지턱’이 될 수 없습니다. 점점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어요. 아직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아닙니다. 여론 때문에 국회 통과가 그렇게 간단치 않을 것입니다.”
▷일본은 연말 소비세 추가 인상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 연말 일본 정부는 내년 10월부터 소비세를 인상(8%→10%)하는 방안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본은 국가채무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우선 쓸데없는 국가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민주당 정부도 2012년 소비세율 인상 계획을 결정할 때 충분한 재정지출 삭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베 정부에서는 관료 주도의 정치가 부활해 자신들의 불필요한 국가 지출을 줄이기보다 국민의 생활을 어렵게 하는 소비세 인상으로 바로 가버렸죠. 아베 총리는 관료 천국에 더 엄한 메스를 들이대야 합니다.”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은 성공적입니까.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취임 후 대규모 금융완화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주가는 올랐습니다. 대기업이나 수출 기업은 수혜를 얻어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수입 물가 부담이 커졌어요. 도쿄 집중의 경제가 되면서 지방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금융과 재정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은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최고의 성장전략은 중국과 한국의 시장을 일본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중국 한국 등과 현재와 같은 정치적 대립으로는 성장이 힘들어요.”
▷한·일은 저출산·고령화도 같이 겪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책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총리를 할 때 ‘아동수당’ 정책을 실시하려 했지만 그 후 흐지부지됐어요. 한쪽에서는 고령화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육,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령화에 비해 저출산 대책은 별로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일본도 한국도 인구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밖에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도 안에서 저출산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은데요.
“젊은이들이 졸업하면 좋은 회사에만 가려고 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자신의 회사를 가지려는 사람들을 잘 키워냅니다. 국가가 인큐베이터로서 지원해 성장시키죠. 의욕을 갖고 창업하고 싶은 의지를 키우는 것이 정부가 할 일입니다. 이런 의욕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 늘려나가는지가 미래 성장을 위해 중요합니다.”
■ 하토야마 유키오 前 총리는
명문가 출신의 知韓派…동아시아공동체 주창자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한식점 ‘비비고’를 자주 찾을 정도로 한류를 좋아하는 지한파 정치인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주창하고 있다.
그는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인 하토야마 가즈오는 중의원 의장, 할아버지인 하토야마 이치로는 총리, 아버지 하토야마 이이치로는 외무상을 지냈다.
“자유는 사랑이며 사랑은 우애”라고 강조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애’를 정치의 바탕으로 삼았다. 지난해 음은 같지만 한자는 다른 유키오(友紀夫)로 개명해 문예춘추 등에 글을 쓸 때는 바뀐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1947년 일본 도쿄 출생 △1969년 도쿄대 계수공학과 졸업 △1984년 정계 입문 △2005년 민주당 간사장 △2009년 민주당 대표·일본 총리 △2013년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 이사장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