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금감원 '감리 그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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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없다" 판명했지만금융감독원이 한 차례 감리를 실시하고도 분식회계를 찾아내지 못한 사례가 8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이 연간 시행한 감리 건수도 최근 5년간 73% 줄어들어 금융당국의 회계감독 기능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청·제보로 분식회계 발견
감리주기도 7년→27년 '허술'
"50명으로 1700여개社 감당 못해"
회계법인 품질관리 제재 강화해야
◆감리하고도 분식회계 못 찾아13일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이 최근 10년간 실시한 감리에서 ‘문제 없다’고 판명한 회사 중 사후 분식회계가 발견된 경우가 8개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2005년 말부터 작년까지 1조3350억원대 분식회계를 한 효성에 대해 2007년 감리를 실시했지만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올해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회계의혹이 불거지면서 진행한 2차 감리에서 비로소 회계분식 사실을 적발했다. 한솔제지의 자금운영을 의뢰받은 증권사가 2003년부터 8년간 2350억원 상당의 매도 가능 채권을 과도하게 부풀린 것도 찾아내지 못하다가 검찰 통보에 의해 실시한 2차 감리에서 발견했다. 이 밖에 삼우이엠씨 희훈디앤지 엑사이엔씨 인성정보 파캔오피씨 신텍 등도 1차 감리는 무사히 통과했으나 국세청 통보와 외부 제보 등을 계기로 수년간의 분식회계가 드러났다.금감원이 최근 5년간 상장사 감사보고서 감리에서 분식회계 등 위반사항을 적발한 비율은 17% 정도다. 657개사 감리에서 117개 위반사항을 지적했다. 그러나 ‘위반사항 없다’고 처리한 회사 중 8곳에서 검찰이나 국세청 조사 등에 의해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나머지 무혐의 처리된 회사의 감리 결과도 신뢰를 잃게 됐다.
김 의원은 “기업의 회계투명성 제고는 자본시장 발전의 전제조건이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것이 금감원”이라며 “금감원이 감리하고도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당국의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사보고서와 공시자료를 위주로 하는 심사감리는 검찰 수사처럼 한 회사만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분식회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감리 주기 7년→27년감리 그물망도 갈수록 허술해지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해 시행한 상장사 감리는 61건으로 2009년의 229건보다 73% 감소했다. 1700여개 상장사가 한번 감리를 받은 다음 또다시 감리받을 때까지 주기를 따지면 기존 7년에서 27년으로 급증한 셈이다. 같은 기간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위탁받아 실시하는 비상장법인 감리 건수도 219건에서 56건으로 줄면서 감사 주기가 8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금감원 회계감독국 관계자는 “최근 동양그룹 대우건설 등 대형 혐의감리에 인력이 집중되면서 일반 감리는 상대적으로 덜 진행됐다”며 “50명의 검사인력으로 1700여개 상장사를 촘촘히 감리하는 것이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식회계 근절을 위해선 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 생산 단계부터 품질관리를 엄격히 하고, 금감원은 회계법인의 품질관리 감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회계법인의 조직 운영상 문제가 드러나도 금감원이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이에 금융위원회는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의 감사 품질을 평가하고, 분식회계 규모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지난 7일 입법 예고했다.
■ 심사감리
감리 대상 기업의 재무제표에 특이사항이 있는지 점검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하는 감리 업무. 외부 제보 등에 의해 회계처리 및 감사 기준 위반혐의 사항을 인지한 경우 착수하는 감리 업무.
■ 혐의감리외부 제보 등에 의해 회계처리 및 감사기준 위반혐의 사항을 인지한 경우 착수하는 감리 업무.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