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엘 미스터리] (1) 금융거래 연체 없었는데 매출 1조짜리 회사, 현금 유입 15억 불과

(2) 왜 추락했나
사업 부진으로 자금 돌려막기 하다 '도주'

(3) 왜 사전에 몰랐나
은행·貿保 구조적으로 수출현장 체크 못해
< 문 닫힌 모뉴엘 서울 사무소 > 서울 가산동에 있던 모뉴엘 본사는 지난 6월부터 제주도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모뉴엘의 영업 마케팅 인력이 입주하고 있는 경기 안양시 서울사무소.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매출 1조원 이상의 수출기업이 느닷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사장은 하루아침에 행방을 감추는 등 무역업계 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평가받고 있는 모뉴엘 사태는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아직도 사건의 전모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무역금융 또는 매출채권 할인매입 등을 통해 1조원 상당의 자금을 제공한 은행들이나 3억달러 상당의 보증서를 발급해준 무역보험공사 측도 모뉴엘이 어떤 경로로 파탄에 이르렀는지를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카드 돌려막기 수법 쓴 것 같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조차 혁신적 기업으로 치켜세웠던 이 회사는 지난 20일 기습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까지 어떤 이상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8월 31일 수출대금 미입금이 처음 포착됐을 때도 금융거래시 단 한 차례의 연체 기록도 없었다.

하지만 모뉴엘의 감사보고서를 찬찬히 뜯어보면 수상한 점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작년 매출이 1조1410억원에 달했는데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입은 15억원에 불과했다. 매출의 80% 이상을 수출하는 회사치고는 상식적으로 현금흐름이 지나치게 미약한 것이다.모뉴엘이 무역보험공사에서 받은 보증서를 담보로 각 은행들로부터 대출을 거의 한도까지 끌어다 쓰고 있는 것도 감사보고서에 포착됐다. 모뉴엘은 작년 말 기준 기업은행 외환은행 국민은행 농협 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수출 관련 대출보증 한도(4억2064만달러)의 95%인 3억9994만달러와 원화 대출한도(205억원)의 96%인 196억원을 빌려쓰고 있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수출이 잘 되는 기업들은 통상 한도까지 대출받는 경우가 많지만 수사당국이 포착한 대로 모뉴엘의 수출이 부풀려진 것이라면 대출자금은 부족한 운영자금을 충당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관세청과 검찰도 이날 모뉴엘의 혐의와 관련, “카드 돌려막기 수법을 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매출에 비해 거래처도 극히 일부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모뉴엘과 거래하는 수입업자는 총 5개”라며 “모두 모뉴엘하고만 거래하는 곳은 아니고 규모가 큰 회사”라고 했다. 감사보고서가 사실이라면 1조원 이상의 매출이 불과 5개 거래처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제2의 모뉴엘 다시 나올 수 있어”

박홍석 모뉴엘 사장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보증을 서준 무역보험공사 직원들은 전날과 이날 모뉴엘 본사를 들러 수소문했으나 행적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재 박 사장의 상황을 나쁘게 보면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 크게 한탕을 한 뒤 도주한 것이고, 좋게 보면 사업이 어려워지자 수출채권이나 재무제표 등을 조작하며 버티다 한계에 이르자 도망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런 수법이 금융사나 무역보험공사, 감독당국에 전혀 포착되지 않은 채 통용됐다는 것은 우리 수출금융 지원시스템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관련 기관들이 각자의 ‘업무 칸막이’를 쳐놓은 상태에서 그 빈틈을 파고드는 기업이 나타날 경우 언제든 ‘제2의 모뉴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모뉴엘 수출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확인한 곳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수출 서류만 보고 있었다. 수출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상당수 관료들은 한국경제신문이 최초 보도한 지난 22일에도 모뉴엘이란 회사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