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대는 세워도 총대는 안멘다?…'합리적 無知'에 막힌 공기업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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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공기업 개혁과 시장경쟁요즘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공기업의 부채 문제와 방만 경영이 도마에 올랐다. 공기업에 대한 관심이 큰 이유는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공기업 부채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부채비율 공기업 253%, 민간 141%
정부·정치권, 경영정상화 나섰지만 도덕적 해이·낙하산 인사 등 여전
공기업 개혁 지지부진한 이유는 사회적 이익 커도 개인 이익 적다 여겨
아무도 나서지 않는 '합리적 無知' 때문
美 워싱턴주 '굴 서식지' 민영화 실험, 공기업 정상화 핵심 엿볼 수 있어
2013년 말 기준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374조2000억원으로 국가채무(482조원)의 77% 수준이고, 여기에 금융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국가채무 규모를 훨씬 웃돈다.
공식적으로 한국의 주요 공기업 부채는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국가부채 기준으로 볼 때는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국가부채는 2배 이상 늘어난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공기업을 포함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료가 공개된 OECD 국가 가운데 한국만큼 GDP 대비 공기업 부채가 큰 국가는 드물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 정부와 정치권은 2013년 말 ‘공공부문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공기업 부채와 방만 경영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개선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고질적인 관행 역시 종식되지 않고 있다. 전문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정치권과 정부 고위관료의 낙하산 인사,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단지 개혁의 시간만 끌고 있을 뿐이다.그런데도 누구 하나 기꺼이 개혁의 총대를 메려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가 도사리고 있다. 개혁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개인은 들이는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작기 때문에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개혁이 사회 전체적으로 훨씬 더 큰 이익을 가져옴에도 말이다.
공익을 명분으로 한 공기업의 사업은 궁극적으로 특정 집단에 유리하도록 자원을 배분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기업의 사업에 대한 책임 주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비효율적 생산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경영성과를 비교해보면 공기업의 경영성과가 더 부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표 참조). 공기업의 수익성이나 안정성 또는 현금흐름 측면에서 모두 민간기업의 경영지표보다 더 낮다고 볼 수 있다.2013년 기준 주요 공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수익성)은 3.2%로,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대상인 46만4000여개 기업의 평균 매출액 영업이익률 4.1%보다 낮다. 특히 기업의 안정성을 나타내는 부채비율은 주요 공기업 평균이 253%인 데 비해 민간기업은 141%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히려 임금수준은 민간에 비해 더 높을 뿐만 아니라 직장의 안정성도 더 탄탄하다.
학력 구분과 연령 증가에 따른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임금수준을 비교한 국회 예산정책처의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임금분석’(2014)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경우 모든 학력에 걸쳐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임금 상승도 더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전문대졸의 경우 입사 초반에는 공기업 임금(196만원)이 민간기업(213만원)보다 낮은데 이듬해부터는 임금수준이 역전돼 30년쯤 지났을 때 공기업 임금은 651만원으로 민간기업의 580만원보다 높다. 그야말로 ‘저효율 고비용’ 구조인 것이다.
경영성과가 떨어지는데도 어떻게 임금이 더 높을 수 있는가? 공기업은 민간에 비해 돈을 빌려 사업을 하기가 용이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 빌린 돈을 갚아야 할 책임소재도 불명확하다. 정부 보증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미국 메릴랜드주 체서피크만 연안의 굴 생산량이 감소하자 메릴랜드주 정부는 1970년대 중반 굴 서식지를 ‘공공화(公共化)’했다. 굴 채취에 대한 수확시기와 기간, 장소, 사람 및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했는데 결국 굴 생산량은 과거 생산량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반면 워싱턴주는 굴 서식지를 ‘완전 민영화’했는데 굴 서식지 환경이 더 양호해지고 잘 관리되면서 양질의 굴이 많이 생산됐다. 워싱턴주와 달리 메릴랜드주에서는 굴 수확을 늘리기 위한 민간의 자체 노력보다는 정부 지원하의 구제금융이나 보조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공기업 정상화의 핵심은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기업의 부채를 감축하고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장경쟁과 민영화의 압력이 필요하다. 시장경쟁과 민영화는 공기업의 창의와 혁신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 또 공기업이 외압에 의해 무모한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을 제거하고, 생산성과 수익성의 향상 없이 과다한 복리후생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따라서 공기업 정상화 과정에서는 시장경쟁에 노출시키는 부실 공기업의 민영화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공기업 개혁 선결조건…경영의 독립성·책임성
공공선택학에서는 정부의 규모와 역할이 비대해질수록 사회적 효율성이 증진되기 어렵다고 본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도 정부 부문의 큰 축이기 때문에 그 규모가 확장될수록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저해되고 민간의 창의와 활력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공기업과 관련된 지대(地代·rent)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도 공기업 개혁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메릴랜드주 체서피크만 굴 서식지 사례처럼 한국도 2000년 전후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KT&G 포스코 KT 등)은 모두 시장 경쟁을 위해 군살을 빼고 체력을 길렀다. 그 결과 타 공기업에 비해 수익성이나 안정성이 모두 개선됐다(그림 참조).
2000년대 초 민영화되기 전 공기업과 민영화 기업의 부채비율과 수익성은 비슷했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 공기업의 부채비율은 지속적으로 악화된 반면 민영화 기업의 부채비율은 꾸준히 개선됐다.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다. 방법론적으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수용하는 공공선택학적 관점에서 보면 관련 이해당사자의 유인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기업 개혁의 선결조건은 독립성과 책임성이다. 그런데 공기업의 지배구조는 정치적 영향과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낙하산 인사의 관행도 여전하다. 정부는 구분회계제도 도입 확대, 공공기관 예비타당성조사의 실효성 제고,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강화 등 기존의 제도를 좀 더 엄격하게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같은 개선안이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민간기업과 달리 공기업은 파산의 두려움이 없다. 경쟁 압력도 없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개혁의 유인도 크지 않다. 이처럼 공기업을 둘러싼 이익집단과 노조, 관료, 정치권 등의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는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공기업 개혁은 추진력을 잃게 된다. 근본적으로 공기업의 독립적 경영과 책임, 그리고 시장경쟁에 노출시키지 않는 한 공기업 개혁은 요원할 것이다.
김영신 < 한국경제연구원·부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