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축 처지고 의욕도 없고…가을 타는 남자?
입력
수정
지면A21
이준혁 기자의 생생헬스 - 계절성 우울증 주의보가을이 깊어질수록 무기력하고 불안해하는 ‘가을 타는 남자’들이 많아진다. 이는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다. 가을에 신체와 감정 변화가 생기는 것을 의학적으로 ‘계절성 기분장애’라고 한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감정 상태가 급격히 변하면서 나타나는 일상 생활의 장애를 말한다.
일조량 줄면서 남성 호르몬 ↓…기분장애 반복땐 우울증 생겨
일반적 우울증과 증상 달라…단 음식 끌리고 잠 쏟아져
하루 30분 이상 햇볕 쬐고 스트레스 줄이려는 노력을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이 가을이 되면 기분이 가라앉았다가 겨울을 거쳐 봄이 되면 나아지지만, 정서 변화에 따라 일상생활에까지 문제가 생기는 증상이 2~3년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계절성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남성호르몬 줄면서 기분장애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남녀 직장인 374명을 대상으로 ‘가을 우울증이 생기는지’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9%가 ‘그렇다’고 답했다. 증상에 대해 남성 직장인들은 ‘온몸에 힘이 없고 축 처진다’는 답변이 39.3%로 가장 많았다. 여성 직장인들은 ‘이유 없이 우울하다’는 응답 비율이 38.9%로 가장 높았다. 이외에도 △만성피로(29.4%) △부쩍 외롭다(22.8%)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18.9%) △잠이 많아졌다(15.6%) △초조하고 불안하다(10.2%) 등의 의견이 나왔다.계절성 기분장애는 일반적인 우울증과는 증상이 조금 다르다.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비슷하지만 우울증은 입맛이 떨어지고 잠을 잘 못 자는 증상을 보이는 반면 계절성 기분장애는 식욕이 왕성해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이 많아진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분비되던 ‘세로토닌(뇌의 시상하부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줄어 기분이 저하되고 의욕이 떨어진다”며 계절성 기분장애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남자들에게 이런 증상이 더 많이 나타날까. 일조량이 줄어들면 햇빛을 통해 만들어지는 비타민D의 생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비타민D는 남성호르몬을 관장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남성호르몬 분비가 줄어 기분장애에 빠져드는 것이다.단 음식 끌리면 계절성 우울증
일조량이 적은 가을에는 기분장애가 반복되고 계절성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소심하고 우울한 성격의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세로토닌 등의 분비가 급격히 줄고, 수면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면서 이유 없이 심리적으로 처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같은 계절성 우울증은 가급적 실내 조명을 밝게 하고, 햇빛 밝은 창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계절성 우울증을 앓게 되면 우울증 기간 동안 많이 먹고 단 음식과 당분을 찾게 된다. 또 신체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주된 증상은 수면 과다와 체중 증가, 무기력 등이다. 이는 일반적인 우울증에서 불면, 식욕감퇴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정신적으로는 피해의식, 망상, 환청, 환각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 중 10% 정도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
전문의들은 계절성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가급적 주변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할 것 △스스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일 것 △휴일 등에 가벼운 소설이나 잡지를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주는 생각을 피하고 긴장을 풀 것 △잠이 안 온다고 억지로 잠을 자려고 하지 말 것 △오랜 기간 혼자 있는 것을 피할 것 △되도록 즐거운 생각을 할 것 등을 권장했다.
심할 땐 수면 정상화 치료 등 받아야
계절성 우울증 증상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이라고 해서 모두 치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치료 대상은 10~20% 정도인데, 1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된다면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는 것이 좋고 특히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또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전문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 치료는 주로 수면 정상화를 위한 수면박탈치료와 광선치료 등으로 진행된다. 수면박탈치료는 잠을 의식적으로 자지 않게 하면서 수면 욕구를 강화시키고, 생각의 초점을 바꿈으로써 수면에 대한 불안감을 경감시키는 치료법이다. 예를 들어 일찍 잠들기보다는 늦게까지 깨어 있도록 하면서 수면에 대한 불안을 줄이도록 한다.
전문의들은 공통적으로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에는 되도록 하루 30분 이상 햇빛을 쬐라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햇빛을 쬐면서 인체 리듬을 다시 정상화시켜주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며 “지나치게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는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큰 결정 사항이나 중요한 일에 대해 잠시 잊고 지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도움말=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