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위기 본질은 '낮은 투자 효율성'…해답은 기업 혁신

김유미 기자의 경제 블랙박스
제조업의 위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제조업은 2009년 이후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제품을 사주던 세계 시장이 골골대고 환율 등 수출 여건은 불리하다. 일본 제조업은 엔저에 힘 받았고 중국은 한국을 추격 중이다.

제조업이 제일 잘나갔던 때는 언제일까. 숫자로 꼽는다면 1973년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 성장률(2005년 기준연도)이 32.3%에 달하던 때다. 지금 보면 어마어마하지만 비결은 간단했다.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구조조정’을 이룬 것.
그해 기계 시설투자는 31% 급증했다. 더 복잡한 설비를 갖게 되자 같은 노동력으로 신발보다 훨씬 비싼 석유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GDP는 연간 19% 성장했다.

당시 한은의 제조업 임금통계를 보면 석유·석탄제품 종사자의 임금은 한 달 3만3700원(1972년)으로 신발의복 종사자(1만3900원)의 세 배에 가까웠다. 자본 축적으로 늘어난 가계소득은 중산층의 기반이 됐다.그렇게 한국 경제 성장엔진 역할을 해왔던 제조업이 최근 경제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LG경제연구원이 전 세계 제조기업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국내 제조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2010년 15.8%에서 올 상반기 0.9%(전년 동기 대비)로 꾸준히 낮아졌다. 반면 전 세계 제조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상승세로 돌아서 올 상반기 6.0%에 달했다.

국내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4.0%에서 올 상반기 4.4%로 소폭 올랐다. 이 기간 전 세계 평균은 4.6%에서 5.2%로 뛰어 국내 기업과 격차를 더 벌렸다.

LG경제연구원은 산업 구조의 문제를 지적한다. 제조기업의 매출을 유형자산으로 나눈 ‘유형자산회전율’은 2010년 이후 평균 2.7회였다. 전 세계 제조기업 평균 3.3회에 크게 못 미친다. 유형자산이란 생산에 쓰이는 자산 가운데 토지와 설비 등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한다.국내 제조기업은 같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유형자산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제조업은 화학, 제철 비중이 높은데 이들은 대규모 생산설비가 필요한 구조”라며 “현금 흐름이 악화돼도 일정한 투자를 계속해야 하니까 경기부진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조기업의 총자산 가운데 유형자산 비중은 35.8%에 달한다. 제조업이 발달한 독일도 19.8%고 미국은 12.8%에 불과하다. 혁신적인 기술, 지식재산권 같은 무형자산 대신 땅과 기계 같은 전통적인 유형자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결국은 투자의 효율성 문제”라며 “과거처럼 대규모 설비투자에 돈을 들이는 방식으로는 부가가치를 끌어올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투자 과잉도 기업들의 골칫덩이다. 2000년대 중국이 한국과 비슷한 성장 전략을 선택해 자본 투입을 늘린 데다 인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추격 속도를 높였다. 그 결과 철강 정유 전자 등 ‘자본집약적 산업’의 수익성이 동반 하락했다.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 과정에서 섬유 의복 가죽 등 노동집약적 산업은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섰다”고 주목했다. 산업 구조조정 당시 미운 오리 새끼와 같았던 업종들이다.

정부는 기업이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종용한다. 하지만 단순히 공장을 짓고 자본 투입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이한득 연구위원은 “더 비싸고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면 GDP는 자연히 뛴다”고 강조한다. 다시 한 번, 식상할지 모르겠지만, 경제 회생 여부는 기업에 달렸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