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익 노리는 슈퍼리치…펀드·ELB에 꽂혔다

정기예금 탈출 가속화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예금보다 투자상품 선택"
최소 가입금액 1억인 신한금투 '롱숏ELB' 1조5000억 팔려
주식관련 상품 인기몰이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 이상인데도 개인투자자들이 몰려들어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투자할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신한금융투자 관계자)

신한금융투자가 중위험·중수익 콘셉트로 내놓은 ‘롱숏ELB’ 상품이 지난 22일 판매잔액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이 상품의 최소가입금액은 1억원. 그런데도 거액자산가들이 몰리면서 최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신한금투 관계자는 “원래는 최소 투자금액이 10억원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주로 가입했다”며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저금리 기조로 개인투자자들의 가입금액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많아 지난 4월부터 1억원으로 가입 기준을 내렸다”고 말했다.

◆“예금은 마이너스 수익률”

기준금리가 연 2%로 내려앉으면서 슈퍼리치들을 정기예금에서 밀어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이처럼 금융권 전반에서 거액자산가들이 일정한도 내에서 위험부담을 늘리면서 수익을 좇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갈 곳 잃은 자산가들이 주식관련 상품 중 최대한 원금이 보장되면서 연 수익률 3~4%가량을 보장해주는 상품으로 몰려가는 모습이다.

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은 정기예금이 더 이상 원금을 보장해 주는 상품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산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연 1% 후반대로 금리가 내려앉은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둘수록 손해라고 본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예상하는 올해 물가상승률(1.4%)과 이자소득세까지 감안한 계산이다.올 들어 정기예금에 돈을 새로 넣었던 자산가들이 금리 인하 조짐을 감지하고 급히 돈을 빼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만기가 되는 12조93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다. 이들 자금은 3~4월쯤까지는 정기예금에 머물렀지만 빠르게 다른 투자상품으로 옮겨갔다.

◆배당주 펀드 등으로 자금 몰려

올 3월 말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5억원 이상 개인 정기예금 잔액은 17조1570억원으로 지난해 말 16조5300억원에서 늘었다.그동안의 감소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시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해 6월 말 16조7550억원, 9월 말에는 16조1910억원을 기록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후순위채 투자자들이 만기도래로 찾은 돈을 정기예금에 넣었다가 낮은 금리를 버티지 못하고 예금 계좌에서 돈을 빼내간 것”으로 추정했다.

정기예금을 탈출한 돈은 주식관련 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소득환류세제 도입 등 기업의 배당성향을 높이려는 정부의 정책의지가 알려진 데다 하반기에 삼성SDS 등 기업공개(IPO)를 앞둔 대기업들도 있어서다.

배당주펀드와 공모주펀드 설정액이 증가세인 데서도 잘 드러난다. 6월 말 3조4856억원이었던 배당주펀드의 설정액은 24일 6조414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공모주펀드도 같은 기간 1조2410억원에서 8조322억원으로 급증했다.파생결합사채(ELB)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중도에 해지하지 않으면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어서다. 최근 들어선 정기예금보다 연 2~3%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요즘 인기를 끄는 ELB는 특정 구간 안에서 지수가 상승하면 일정 수익률을 얻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6월 말 7조9654억원이던 ELB 발행잔액은 24일 8조322억원으로 늘었다.

박신영/황정수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