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이 '잉글리시 푸어'된 사연…"영어가 등골브레이커"

/미국의 한 대학에 가을이 내린 전경=SORA
수년 전, 교육열 높은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에 사는 이들 사이에 이런 말이 암암리에 나돌았습니다. 동네 이름을 앞에 붙인 “000거지”가 그것인데요. 이는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초중고 자녀에 대한 사교육비에 시쳇말로 ‘몰빵’하다 보니 자신 사는 꼴이 거지와 같다고 해서 나온 말로 알려졌습니다.

이에서 유래했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후에 무리하게 대출받아 산 아파트의 값이 폭락해 빚더미에 앉은 것을 빗댄 ’하우스 푸어‘란 신조어가 등장해 사회적으로 크게 유행했지요. 그 뒤 특정 명사 뒤에 이처럼 ’푸어‘를 갖다 붙이는 것은 유행처럼 크게 번져 현재는 ’~ 푸어‘ 전성시대라고 불리는 실정입니다.취업가에서 오늘 2014년 10월 28일 ‘또 다른 푸어’가 등장할 전망입니다. 이름 하여 ‘잉글리시 푸어’입니다. 이는 취업을 준비 중인 국내 대학생의 상당수가 한 달 생활비의 80% 가까이를 ‘영어’에 투자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자신 허리를 휘게 하는 주요인이 된다고 지적하는데서 비롯합니다.

영어가 이른바 등골 브레이커라는 얘긴데요. 이를 방증하는 2개의 설문조사 결과가 이날 나왔습니다. 예컨대 강사전문 취업포털 강사닷컴과 알바천국이 대학생 1032명을 대상으로 함께 시행한 ‘사교육 현황’에 따르면 응답 대학생의 35.7%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응답자 가운데 취업을 눈앞에 둔 4학년생의 경우 열 명 중 6명 가량 (57.1)이, 3학년은 네 명(41%)정도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요.국내 대학생들이 사교육에 투입하는 비용은 한 달에 평균 ‘31만원’ 정도로 집계됐습니다. 국내 대학생의 상당수가 상당한 돈을 투입하는 사교육은 역시나 영어가 꼽힙니다. 사교육을 받는 분야로 1위 ‘토익’ (35.9%)과 3위 ‘영어회화’ (7.3%)가 지목됐습니다. 2위는 ‘자격증’ (25.3%).

응답 대학생들은 특히 사교육 가운데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것으로 ‘어학연수’ (월평균 38만3000원으로 1위)를 지적했습니다. 그 뒤 돈 많이 드는 사교육 종류로 ‘면접/취업 관련’ (35만2000원) ‘공무원시험’ (34만1000원) ‘자격증’ (33만7000원) ‘컴퓨터 OA활용’ (27만원)순 입니다.

취업준비생들이 영어에 들이는 돈의 규모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이들 3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어학시험 준비 현황’ 테마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가령 ‘공인어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는가?’란 물음에 이들의 십중팔구 (89.7%)가 “그렇다”는 대답을 내놨습니다. 이들이 어학시험을 보는 이유론 ‘취업을 위해서’가 69.5%로 가장 높습니다. ‘자기계발을 하기 위해서’가 11.8%, ‘어학연수 (9.8%)’ ‘졸업을 위해서 (8.9%)’가 그 뒤를 잇습니다.

취업준비생들은 특히 공인어학시험을 위해 한 달에 평균 ‘32만9000원’을 지출한다고 응답했는데요. 이 돈은 학원비, 문제지 구입비 같은 공인어학시험 준비에 드는 22만7000원과 응시료 10만2000원으로 구성됩니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취업준비생들이 공인어학시험에 들이는 이 같은 규모의 비용은 대학생의 한 달 평균 생활비인 약 40만4600원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몬 조사, 2014년 10월 기준)과 비교할 경우 적지 않는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단순하게 수치만으로 계산해 보면 생활비의 80%가량을 ‘영어’에 투자하는 셈입니다.[아래 표 참조]
/공인 어학 시험에 들이는 비용=잡코리아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대다수 (91.9%)가 공인어학시험으로 인해 경제적인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8.9%에 그쳤습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