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시장 枯死"…단통법 한 달, 단체로 고통

소비자·제조·판매·통신사 모두 불만

"호갱 없앤다" 야심찬 시행…단말기값 크게 안 떨어져
판매·제조사 "안 팔려" 울상…통신사 "보조금 배분 탓" 억울
정부·국회 "지켜보자" 곤혹
< “단통법 폐지하라” >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소속 휴대폰 매장 운영자들이 3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단통법 폐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3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 보신각 앞.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단통법 전면 중단하라.’ 휴대폰 유통상 모임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이날 집회를 열고 “국민 편익을 위한다고 제정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오히려 국민 모두의 불편과 피해만 키워 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통법은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애초 취지는 소비자 차별 해소와 가계 통신비 인하. 그러나 지난 한 달간의 성적표는 시원찮다. 되레 없던 불만까지 쌓였다. 통신시장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냐”는 볼멘소리만 가득하다. 소비자와 판매점 제조사 모두 예전보다 상황이 어려워졌다. 비난의 화살이 쏠린 정부와 통신사도 억울하다며 연일 하소연이다. 단통법(端通法)이 ‘단체로 모두를 아프게 하는 법’이라는 의미의 ‘단통법(團痛法)’으로까지 불리는 이유다.○모두가 패자(敗者)인 단통법

올 들어 단통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9월까지 월평균 번호이동 건수는 70만건을 조금 웃돌았다. 많을 때는 100만건을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단통법이 등장한 이달부터 시장은 급변했다. 지난 29일까지 번호이동 건수는 23만9663건에 그쳤다. 평상시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가장 큰 원인은 단통법에 따른 보조금 규제다. 정부가 ‘호갱(호구+고객)’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보조금 상한선(현행 30만원)에 단단한 마개를 씌우면서 시장에 경쟁이 사라지고 활력이 떨어졌다. 휴대폰 단말기 가격은 크게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보조금만 깎이다 보니 소비자의 지갑은 닫혀 버렸다. 정부와 통신사는 월별 요금 할인액 등을 고려하면 예전보다 보조금 규모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소비자들의 ‘체감’ 가격과는 괴리가 크다.

직격탄은 유통망에 떨어졌다. 이날 집회에서도 판매점주들은 “우리는 휴대폰 액세서리만 팔라는 얘기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전국 휴대폰 대리점주와 판매점 사업자는 각각 8000여명과 3만여명, 매장은 5만여개에 달한다.

단통법 시행 초기 푹 꺼졌던 수요가 월말이 되며 조금씩 살아나고는 있다. 이달 첫주 3만4000여건에 불과하던 번호이동 건수가 마지막주엔 7만건 이상으로 불었다. 이 대목에서 해석은 갈린다. 미래창조과학부 등 관련 부처는 “단통법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애플의 아이폰6 출시를 더 큰 요인으로 지목한다. 단통법의 부작용이 치유됐다고 보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이리저리 튀는 유탄

시장은 한창 분풀이 대상을 찾고 있다. 맨 먼저 통신회사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통신사 배만 불리는 법’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업체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예전엔 뭉텅이 보조금이 일부 소비자에게 몰린 반면 지금은 가입자 전반에 골고루 배분되고 있다”며 “단통법으로 마케팅 비용이 줄어 통신사의 이익이 늘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휴대폰 제조사 쪽에도 불똥이 튀었다. 해외보다 출고가가 비싸다는 비난이 나올 때마다 해명하느라 진땀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출고가는 국내외에서 비슷하지만 보조금 상한제 때문에 국내 제품이 더 비싸다는 착시현상이 발생했다”고 강조했다.‘청부 입법’ 파트너인 정부와 국회도 코너로 몰렸다. 정치권에서는 뒤늦게 법안 재개정 논의가 뜨겁다.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하거나 단말기 판매와 통신 서비스를 분리하는 완전자급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등의 대안이 쏟아지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자꾸 개정 얘기가 나오면 소비자들이 휴대폰 구입을 미루는 등 시장이 더 혼란스러워진다”며 “최소한 3개월 정도는 지켜본 뒤 개정 방안을 논의하자는 쪽으로 국회와 정부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