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고작 3%' vs '3%씩이나'…경제 심리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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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기자의 경제 블랙박스‘GDP(국내총생산)는 틀렸다.’
최근 한국은행에 큰 울림을 줬다는 한마디다. GDP 통계를 담당하는 한은 입장에선 도전적인 화두다. 점잖고 보수적이라는 한은 행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지난 28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점에서 강연이 하나 있었다. 석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행원 대상의 ‘명사 특강’. 이번엔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를 모셨다고 한다. 2010년 서울대 행복연구센터를 세워 행복의 가치를 역설해 온 그는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이란 책으로도 유명하다. 최 교수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틀, 즉 마음에 따라 행복이 결정된다고 말해 왔다.
이날 강연에서도 그는 ‘좋은 인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개한 책이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등이 공저한 ‘GDP는 틀렸다’다. 사실 1930년대 만들어진 GDP 통계가 삶의 질과 거리가 있다는 주장은 이제 새롭지는 않다.
강연에 대한 호응은 컸다고 한다. 이주열 총재를 포함해 250여명이 고개를 끄덕였다니 말이다. 한은으로선 작년보다 성장률이 올랐는데 경제심리는 최악인 원인을 알고 싶었을지 모른다. 최근 만난 한 금융통화위원은 특히 큰 의미를 두는 듯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외부 압박에 늘 고심하던 그였다. “경제가 안 좋은 것은 맞지만 비관이 과도한 건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는 나라 중에 한국만큼 성장한 곳이 별로 없는데….”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를 뒤져봤다. 지난해 1인당 GDP가 한국(2만5975달러)보다 높은 국가는 30개. 이 가운데 한국(3%)보다 성장률이 높은 국가는 6개였다. 카타르(6.5%) 바레인(5.3%) 아랍에미리트(5.2%) 같은 상위 3개국은 자원부국에 해당한다. 1인당 GDP가 우리보다 높은 네덜란드와 핀란드, 스페인 등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꽤 선전한 셈이다. 금융위기 직후의 마이너스 성장 때도 아니고 ‘3%나 성장’했는데 우리는 왜 늘 안 좋다고 여길까. 한은에 따르면 현재 생활형편을 묻는 경제심리지수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0월 99였다. 100 미만이면 상황을 안 좋게 진단한 사람이 조금 더 많다는 의미다. 5년 뒤인 올해 10월 이 지수는 91로 더 낮다.비관주의의 뿌리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있다. 1970~1980년대 고성장과 호황을 겪었던 한국 사람들에겐 요즘의 경제적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정부와 언론이 ‘3%로는 부족’하다며 위기감을 키운다는 비판도 있다. 한 전문가는 “한은이 금리를 내리니까 ‘경기가 그렇게 안 좋은가’라며 경제심리를 도리어 끌어내린 면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득격차에서 오는 문제일 수도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바닥을 치고 오를 때 윗목 아랫목의 온도 차가 커진다”며 “고소득 가구보다 저소득 가구의 여건이 격차를 두고 개선되기 때문에 체감경기는 더 나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생활형편지수의 올해 1~10월 평균을 구해보면 5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체감지수는 99.8인데 400만~500만원(95.2) 300만~400만원(92.8) 100만~200만원(84.1)으로 내려갈수록 뚝뚝 떨어졌다.
눈에 띄는 것은 앞으로 생활형편 ‘전망’을 묻는 지수는 95~105까지 대체로 높다는 점이다. 지금은 쪼들리지만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주의가 그래도 대세인 것일까. 또 하나, 자원도 없는 싱가포르(1인당 GDP 5만5182달러)의 지난해 성장률은 3.9%로 나름대로 고성장했다. 이왕이면 희망을 키워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