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 아름다운 바통터치] 3·4代까지 한우물…"가업승계, 재산 아닌 業 물려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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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대계' 꿈꾸는 수상기업동아연필은 1970년대 말 왕자표가 지배하던 크레파스 시장에 피노키오 브랜드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에 당시로는 파격인 ‘6각형 디자인’을 앞세웠다. 피노키오는 얼마 뒤 크레파스 시장 1위로 올라섰다. 1948년 설립된 동아연필은 4대에 걸쳐 67년간 문구류에 전념하고 있다.
한경·중기청·가업승계기업協 주최
中企중앙회·IBK기업은행 주관
‘비나폴로’라는 비타민 제품은 1965년 시장에 나왔다. 성분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캡슐로 만든 것이 화제를 모았다. 이후 비나폴로는 20여년간 국내에서 영양제의 대명사로 불렸다. 비나폴로를 만든 유유제약은 최근 50년 만에 후속 제품인 ‘비나폴로 프리미엄’을 내놨다.31일 열린 ‘가업승계, 아름다운 바통터치’ 행사에서 ‘명문 장수기업’에 선정된 기업들은 대부분 동아연필 유유제약처럼 한우물만 팠다. 또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며 경쟁력을 유지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우물 전략과 혁신
작년 496억원의 매출을 올린 삼해상사의 김덕술 대표(2세 기업인)는 “김 하나만 하니까 오히려 돌파구가 보였다”고 말했다. 김에 집중하다 보니 소비자 변화가 눈에 들어왔고,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1968년 설립된 삼해상사는 국내 최초로 ‘조미 구이김’을 대량 생산한 업체다. 1987년 ‘명가 김’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1988년에는 조미김 구이기계를 개발해 즉석에서 김을 구워 팔았다. 맞벌이 부부의 수요 증가와 함께 회사도 성장했다.
김 대표는 “미국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며 “수출기업으로 변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업 승계는 재산이 아니라 ‘업’을 물려주는 것”이라며 “창업자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원기업은 6·25전쟁 후 나무가 부족하자 국내 최초로 콘크리트 전봇대를 만들었다. 이어 전봇대에 디자인을 입힌 ‘디자인폴’을 만들어 또다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1960년대 말 사출성형기 국산화에 성공한 동신유압은 국내 최초로 전자동, 초절전형, 초소형 정밀 사출성형기를 만들었다.
1968년 설립된 이구산업도 한길만 걸었다. 구리가공재인 신동품(伸銅品)압연 국산화에 성공, 합동판 제품을 생산·공급하는 구리가공 전문기업이다. 손인국 이구산업 대표(2세)는 “구리는 청동기시대 이후 인류와 함께한 금속”이라며 “전자산업의 발달과 함께 반도체 설비 등에 쓰이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구리 외길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3세대 승계자는 승계 교육을 위해 이구산업에서 근무 중이다.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춘 혁신의 결과”라고 말했다.
전통과 향토 브랜드로
장수기업 대부분은 30~60여년간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고용 등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들 기업은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1948년 설립된 대양제면은 3대째 국수만 만들고 있다. 이 회사의 대표 브랜드는 ‘소표국수’다. 30년 전부터 선물용 국수 시장에 진출해 부부금실을 의미하는 ‘금실면’ 브랜드를 키웠다. 권호용 대양제면 대표(2세)는 “제조업 전반이 어렵지만 1996년 자동화 설비를 구축해 원가 절감과 공정 개선에 힘쓰면서 경쟁력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대양제면은 지난해 경북 ‘향토뿌리기업’으로 선정됐고 2007년부터 이 지역 중소기업 공동브랜드 ‘실라리안’에 참여하고 있다. 권 대표는 “지역사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953년 설립된 삼진식품은 가장 오래된 부산어묵 제조업체 중 하나다. 어묵의 원조인 일본에 어묵을 수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어묵 생산 공정이 비위생적일 것이라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생산과 판매가 함께 이뤄지는 ‘어묵 베이커리’를 선보였다. 대전 성심당(튀김소보로), 군산 이성당(크로켓)에 맞먹는 부산의 명물 ‘어묵 크로켓’을 만들겠다는 게 박종수 사장의 각오다.
여수=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