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故 신해철의 죽음, 의사를 왜 못 믿나

▲ 생전 소신 있는 사회참여로 주목 받아왔던 故 신해철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의료사고에 대한 문제를 짚었다.(사진 = 한경DB)

신해철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어제는 평소 연예소식을 거의 다루지 않던 시사전문뉴스토크쇼에서도 잇따라 신해철 관련 사건을 다뤘고, 서울 광화문 인근의 대형 전광판에도 신해철 관련 소식이 계속 떠있었다. 인터넷에서의 관심도 물론 폭발적이다.



처음 신해철이 쓰러졌을 때 생전 신해철의 음악세계나 사회참여활동 등을 조명한 것에는 이 정도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때까지는 시사전문뉴스토크쇼에서도 신해철 관련 소식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가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바로 의료사고 논란으로 비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신해철의 죽음은 팬들의 관심사에서 국가적 관심사로 변화했다.

얼마 전 김부선의 이슈가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난방비리가 국민적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한 해 아파트 관리비 규모가 12조원에 달한다는 상황에서, 그 엄청난 관리비가 과연 투명하고 정당하게 집행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의 60% 이상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김부선의 문제는 바로 국민의 문제이기도 했다.

개개인 한 명 한 명은 거대한 아파트 관리비 문제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렇게 무력감을 느끼던 차에 김부선이라는 연예인이 앞장서서 의혹을 파헤쳐주니까 국민적인 성원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료문제는 아파트 관리비 문제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아파트 거주인이 60% 이상이라면, 병원에 가는 국민은 100%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평소 병원에 대해 불신을 가져왔다. 과잉진료, 부당진료, 무성의한 대응, 사후관리 무책임, 막무가내로 환자에게 책임 전가 등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그런데 의료분야는 워낙 전문적인 부문이고 의사들이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어서, 일반 국민이 병원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웠다.



의료소송은 2010년에 876건이었던 것이 2012년엔 1008건으로 늘어났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피해자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최소한 연간 몇 만 명 정도 규모로 추산된다. 수많은 국민이 병원 앞에서 절대 을의 신세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왔다.



그런데 우리 같은 장삼이사보다 훨씬 강해보이는 유명 연예인조차 ‘병원에 걸어 들어갔다가 쓰러져 나오는’ 일을 당했다고 하니까 폭발적인 관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내가 당한 일, 앞으로 우리 가족이 당할 수도 있는 일처럼 느껴져서다. 실제로 내 주위에도 ‘걸어 들어갔다가 쓰러져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간 뒤에 부인과 어린 자식이 남았다. 이런 일들이 누적돼 의사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이다.



물론 앞으로 조사결과 의료사고가 아닌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누리꾼의 입장에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의료시스템과 사법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기 때문에, 법정에서 어떻게 결판이 나든 일반 국민은 앞으로도 계속 의심할 가능성이 크다. 누리꾼이 신해철 사고에 대해 어떤 심정인지는 댓글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족 중에 큰 수술해본 사람들이면 대부분 병원들의 이런 태도 알고 있을 겁니다. TV에서라도 승소하는 모습 꼭 보고 싶습니다.’



‘수많은 의료사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묻히는 게 대다수죠 ㅠㅠ 이번 일 계기로 꼭 밝혀지길 바라며. 의사들은 정신차리시길.’



‘유명 가수한테도 이딴 식으로 나오는 걸 보니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한텐 어떻게 했을지 짐작이 간다.’



‘의료소송해서 피해자가 이길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저도 병원에서 어이없게 가족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이 유명인이니까 이 정도 알려진 거지… 일반인이었음 ‘얄짤’ 없었을 것이다. … 이 일을 계기로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신해철의 유족 중에 기업 임원도 있고 부인도 외국계 유명 회사에 근무했던 인텔리라고 하니까, 일반인보다는 강한 힘으로 병원에 맞서 주길 바라는 보상심리도 있다. 평소 병원 앞에서 느꼈던 무력감을 신해철 유족들을 통해 보상 받으려는 것이다. 신해철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이, 윤종신, 이승철, 윤도현 등 유명 연예인 군단이 총출동한 것도 대중에겐 마치 정의의 군대가 출격하는 것 같은 통쾌감을 안겨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댓글도 나타난다.



‘일반인이야 의사*들이 우기면 못 이기지만, 신해철 정도 되면, 힘 있는 사람들이 의사*들 정도는 바르고도 남을 것이다.’



병원이 이렇게까지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실험을 했다. 실험자가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 갔을 때는 간단한 처치와 함께 몇 만 원 정도의 청구를 받았다. 그런데 같은 사람들이 전문병원, 유명 프랜차이즈 병원 등에 가니까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 이상이 소요되는 시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런데 그 시술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병원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최근 들어 병원을 영리기업처럼 만들려는 분위기가 강해진다. 병원이 국민의 보건복지를 위한 준공공기관 같은 느낌에서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영리기업으로 변해가면, 환자를 돈으로만 보고 비인간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병원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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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기자 wowsports08@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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