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인트] 솔로몬의 지혜 필요한 통상임금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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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使 혼란스럽게 하는 하급심 판결파업과 잔업거부를 거듭하던 현대·기아자동차가 진통 끝에 임금단체협약을 타결했지만, 양사 노사가 별도의 상설협의체에서 통상임금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기 때문에 통상임금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 일찌감치 임단협을 타결한 대우조선해양 역시 통상임금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19년 무분규 타결을 자랑하던 현대중공업도 통상임금 갈등으로 임단협 타결을 못 하고 있다. 통상임금 문제는 여전히 대형 산업현장의 노사관계 중심에 있는 것이다.
통상임금 소송 크게 늘어나게 해
산업현장 갈등 봉합토록 판단해야
김희성 <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지난해 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에 대한 판결을 내렸을 때만 해도 산업현장의 통상임금 갈등이 조기에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통상임금 요건에 따라 하급심 법원이 일관되게 판결하면 법적 안정성이 확보돼 소송 또한 자연스레 줄어들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에서 가장 큰 특징은 ‘고정성’ 부분이다. 법원은 모호했던 고정성 요건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규정했다. 근로자가 초과근로를 제공할 당시 지급 여부가 확정된 임금만이 고정성을 충족한다고 했다. 즉 중도 퇴사자가 일할(日割) 계산해서 지급받은 임금이면 언제 퇴사하더라도 받을 금액이 명확하므로 고정성이 충족된 것이라고 봤다. 반면 특정일 재직한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은 그 지급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고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봤다.
이후 대우여객, 신흥교통, 대한항공, 한국공항 등의 소송에서 하급심 법원은 이들 기업의 상여금이 고정성을 결여했으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판결했다. 하급심 법원은 노사가 예측한 대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기준을 제대로 적용했다. 그 결과 일부 산업현장에서 소모적인 소송보다는 노사가 합의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통상임금 소송은 250여건으로 크게 늘었고, 판결에 대한 항소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일부 하급심에서 노사 당사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판결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지난달 10일 부산지방법원의 르노삼성 판결은 노조 또는 근로자에게 협의보다는 소송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한 판결이 아니었나 걱정이 든다. 퇴직자에게 일할지급하지 않아 전원합의체에서 고정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규정한 정기상여금을 부산지법이 통상임금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부산지법은 정기상여금을 퇴직자에게 일할 계산해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고정적 임금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런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기준은 부차적인 사정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헌법 제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법관에 따라 사법부 판결이 일관되지 않다면 산업현장의 노사관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은 법적 흠결로 인해 노사가 사법부의 판결에 의지하고 있다. 250여건에 달하는 통상임금 소송이 하급심 판결에 불복해 모두 대법원까지 가는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사문제는 노사가 협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법적 흠결로 노사 간 합의가 어렵다면 사법부가 올바른 판결로 중재를 해줘야 한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산업현장의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는 위대한 솔로몬이 되길 기대한다.
김희성 <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