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장 180명 "예산 부담 못해"…'4대 복지'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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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복지' : 무상보육·기초연금·무상급식·누리과정 >대한민국의 ‘4대 복지’가 흔들리고 있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바람을 타고 2011년 이후 ‘보편적 복지’의 모델로 등장한 무상보육·기초연금·무상급식·누리과정이 막대한 재정 부담으로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는 지방채 발행 등을 통해 ‘돌려막기’로 버텨왔지만 이대로는 연간 22조원이 넘는 4대 복지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무상보육·기초연금 중단 위기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6일 “정부가 추진하는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으로 지방자치단체 재정 구조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 더 이상 부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 226명 중 180여명은 이날 경주 힐튼호텔에서 민선 6기 1차 총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지난 5일 경기교육청이 내년 누리과정 교육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를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기초자치단체는 무상보육과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재원 중 10~30%가량을 부담한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해당 재원 편성을 중단할 경우 무상보육과 기초연금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기초자치단체들이 일제히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더 이상 무상보육과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재원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예산 비중은 2011년 20.9%에서 올해 26.1%로 5.2%포인트 높아졌다. 전체 지자체 한 해 예산 126조원 중 33조원이 무상복지를 비롯한 사회복지 예산으로 쓰였다. 영유아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시행에 따라 복지비가 급증한 것이다. 사회복지 예산 비중은 광역자치단체에 비해 기초자치단체가 높다. 광역시와 광역도의 평균이 각각 32.7%와 30.1%인 데 비해 자치구의 예산 비중은 52.9%에 달한다.
서울 25개 구청 중 성동, 중랑, 금천구는 이미 지난 9월에 기초연금 예산이 바닥나 서울시에서 긴급 교부금을 지원받았다. 협의회장인 조충훈 순천시장은 “작년에 무상보육이 전면 확대되면서 지자체의 보육비 부담만 3조6000억원에 달했다”며 “그 결과 2014년에는 작년보다 1조4000억원을 추가로 부담했다”고 지적했다.◆땜질 처방으론 22조원 감당 못해
무상보육·기초연금·무상급식·누리과정 등 4대 복지에 필요한 비용은 연간 22조5000억원이 넘는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불러온 무상급식이 첫 시행된 이후 이듬해엔 무상보육과 누리과정이 도입됐다. 지난해 8월부터는 종전 기초노령연금을 대신해 기초연금이 시행됐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시·도교육청은 4대 복지에 들어가는 재정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지자체들은 복지 지출은 늘어난 반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지방세 수입은 줄어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복지 예산 증가율은 12.6%로, 지방 예산 증가율(5.2%)의 두 배가 넘는다.4대 복지에 대한 재정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12년부터였지만 그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땜질식 처방을 했다. 정부는 2012년 무상보육 국비 지원을 늘려 달라는 지자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1조원가량을 지원했다. 각 구청은 카드 돌려막기나 교부금을 지원받아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지난해 정부와 무상보육 재원을 놓고 갈등을 빚은 서울시는 20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각 시·도교육청이 편성을 거부한 누리과정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은 2조1429억원에 달한다. 올해까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던 만 3세의 누리과정 예산이 내년부터 시·도교육청 몫으로 할당되면서 올해보다 5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각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충당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면 1조9000억원 규모를 사들일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날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긴급총회를 열고 누리과정 예산 일부를 편성하기로 결의했지만 2~3개월치에 그친 수준이다.
내년에 전국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50% 미만으로 추락하는 등 재정 건전성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이에 연간 22조원 넘는 비용이 드는 4대 보편적 복지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원식 한국재정학회장(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은 “보편적 복지 기조에서는 막대한 재정 지출이 수반돼 현 정부의 재정 상태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계층 이동의 시발점이 되는 보육, 교육, 출산 등의 분야에서는 선택적 복지 시스템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