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운 노조, 노무공급 독점 포기

계속된 취업비리 해결 위해…138년 만에 내린 결정
채용 비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부산항운노동조합 집행부가 138년간 유지해온 항만 노무공급 독점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가장 많은 항운노조원을 가진 부산항운노조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노무공급 독점권 포기를 최종 결정하면 울산 등 다른 지역의 항운노조도 노무공급 독점권 대신 수급관리위원회를 통한 인력공급 형태로 바뀔 것으로 항만업계는 보고 있다.

김상식 부산항운노조 위원장은 10일 “항만 노·사·정이 참여하는 ‘부산항 항만노동인력 수급관리위원회’를 꾸려 항만 하역시장에 필요한 인력을 뽑고 배치하는 일을 투명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런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방안을 오는 14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제2회 부산국제항만콘퍼런스의 항만 노무공급 세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부산항운노조가 독점권을 포기하는 이유는 해마다 불거져나오는 취업비리 때문이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부산항운노조의 취업비리가 노조에서 행사해온 항만 노무공급권 독점에서 비롯된 만큼 조직 운영 형태를 그대로 뒀다간 범죄자가 속출하면서 자멸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직의 투명성과 효율적인 인원 공급을 통해 새로 거듭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취임한 뒤 노조 집행부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노·사·정이 참여하는 항만노동인력 수급관리위원회 구성을 준비해왔는데 세월호 참사로 늦어졌다”며 “현재 항만 노사관계로는 급변하는 부산항(사진) 노무인력시장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결단했다”고 말했다.
노(부산항운노조)·사(부산항만물류협회, 부산항만산업협회)·정(부산지방해양항만청, 부산항만공사)이 참여하는 부산항 항만노동인력 수급관리위원회는 먼저 부산항에 필요한 하역인력이 얼마나 되는지 산정하는 작업을 한다. 항만 하역작업이 자동화되면서 그만큼 하역인력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부산 북항의 경우 지난해 말 감만부두 운영사 통폐합과 올초 우암부두 폐쇄로 물량이 줄었는데도 컨테이너를 고박·고정하는 일인 래싱업무를 담당하는 항운노조의 상시 비조합원(임시직)은 오히려 늘어났다.

하지만 앞으로 화물을 싣고 내리는 데 필요한 신규 인력 채용 규모가 확정되면 항만 노·사·정이 참여하는 항만노동인력 수급관리위원회에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람을 뽑아 배치하게 된다. 구체적인 수급관리 계획은 부산지방해양항만청 등 관련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항운노조 측은 설명했다.하지만 부산항운노조 내부 반발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항에 하역작업을 하는 용역업체가 늘어나면서 항운노조 조합원 일자리가 줄어들었는데 노무공급 독점권까지 포기하면 그만큼 조합원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산항의 한 관계자는 “‘상시 비조합원’ 고용 등의 문제로 부산항운노조 집행부와 일부 지부 간 다툼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무공급 독점권 포기 문제가 불거지면 부산항운노조 내부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