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폴리페서를 위한 변명

출세 지향 교수들의 공직 진출 비난
정파적 타산·편 가르기 아니라면
역량 있는 적임자 배제 이유 없어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
‘관피아’가 밀린다느니 ‘폴리페서’가 신났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돈다.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관피아 의혹으로 전직 고위관료들이 산하단체로 가는 일이 줄었고 그 틈에 교수들만 좋게 됐다는 것이다. 한 언론사 분석에 따르면 올 3월 이후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교수 출신이 공공기관 임원이 됐고 이들 대부분은 대선 캠프에 있었거나 선거를 도왔던 인물들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 정도면 교육부 전직 관료마피아를 일컫는 ‘교피아’와는 별도로 ‘교피아 II’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만 뒷맛은 영 씁쓸하기만 하다.

불편하지만 진실이기 때문일까. 주변을 둘러보면 교수직을 발판 삼아 정계나 공직에 진출해 입신양명하려는 의도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장차관이나 공공기관의 장(長)이 되기 위해 배경과 인맥, 학연과 지연 등 각종 연고를 동원하는 양태를 보면 관피아 뺨친다. 정년을 곱게 마친 분이 하도 드물어서인지 단지 정년퇴임만으로 칭송받는 일도 있다. 중년에 공직인사검증 한 번 못 받으면 팔불출 취급을 받기도 하고 50줄을 넘겨 학내외 이런저런 장 자리 하나 못 차지하면 뭔가 모자라거나 결함이 있는 게 아닌지 괜한 눈총을 받기도 한다. 사회과학뿐 아니라 인문, 자연과학, 공학,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이름난 대학교수면 모두 잠재적 공직후보로 간주되는 이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폴리페서란 말은 관피아에 못지않게 부정적 의미를 지닌 프레임이다.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기보다는 교수직을 발판으로 입신양명을 꾀하는 교수라는 낙인이다. 정부자문 등 사회봉사 항목이 교수업적평가의 필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잘못 걸려들면 손가락질을 피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학문적 양심을 실천하려는 교수들까지 폴리페서 범주에 넣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지만 실천적 지성과 출세 지향적 소신을 무 자르듯 선명히 분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폴리페서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결국 지난해 8월 국회의원의 교수 겸직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국회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폴리페서는 근절되지 않았고 여전히 선거캠프와 관변을 기웃거리며 입신의 기회를 엿보는 교수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교수의 공직 진출 자체를 절대적으로 금지할 것은 아니다. 전문성이나 역량, 도덕성 등을 갖춘 인재풀이 한정됐던 과거 시절은 물론 지금도 교수는 나라 발전에 요긴한 고급 인적 자원이다. 과학기술분야는 물론 법이나 행정, 경영, 경제 등 실용적 학문 분야의 경우도 교수라고 배제할 이유는 없다. 물론 문제는 있다. 밖에선 그렇게 비판해대던 교수 출신도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결국 별수 없더라는 한 중진 국회의원의 말에 민망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교수 출신 공공기관장 중 성공한 예가 드물다는 푸념도 들린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무책임하고 누구든 가르치려 들지만 조직 장악이 서투르며 업무 파악에도 문제가 많다는 불평이 늘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런 세평이나 불만은 실은 낙하산이든 자가발전이든 폴리페서 개개인에 대한 것이지 교수 전체, 아니 폴리페서 전체에 대해서도 일반화할 것이 아니다.

사실 폴리페서란 명칭 자체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연구실을 지키고 강의를 준비하는 대다수 교수들에 대한 능멸이다. 관피아란 괴이한 명칭이 대다수 성실한 관료들을 모욕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일 유능하고 성실한 인사를 공정하게 선발해 공직에 기용한다면 그가 전직 관료든 교수든 상관이 있을까. 엽관제(獵官制)는 근절도 어렵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개개인의 역량과 자격, 공정성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자기 사람만 골라 쓰는 배타적 보은인사가 문제일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적임자를 쓰고 자기 사람이 아니라도 해당 분야에서 역량을 증명한 인사를 영입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정파적 이해타산과 배타적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굳게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