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보팅 폐지 후폭풍 …"감사선임 위해 주주 수만명 찾아다녀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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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4
내년 150개社 감사선임 비상
섀도보팅 대안 못찾아
재무제표 승인 등 '막막'…84개社는 감사선임 앞당겨
"주총 못열면 상장폐지"
재계, 정부에 상법개정 요구…與의원 개정안 발의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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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걸린 재계섀도보팅 폐지가 코앞에 닥치자 재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상장사들은 내년 주총 때 보통결의 요건(참석주주의 50% 이상 찬성+전체 주주의 25% 이상 찬성)을 맞추지 못하면 사외이사 선임은 물론 재무제표 승인도 못 받는다. 이렇게 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뒤 상장폐지 수순을 밟아야 한다.
내년에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해야 하는 590개 상장사 최고경영자(CEO)들의 머릿속은 더 복잡하다. 감사 선임은 3% 룰도 적용받기 때문이다. 상장회사협의회는 이 중 의결정족수를 확보하기 힘들어 섀도보팅을 이용해온 150개 상장사 가운데 감사선임 실패 사례가 나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전체 주주의 60~70%가량이 수시로 주식을 사고파는 소액주주여서 평소 관리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손 쓸 방법이 없어 관련 상법 규정이 바뀌거나 섀도보팅 폐지가 유예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업계에선 소액주주 비중이 큰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비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지분을 대량 보유한 연기금 펀드 등 기관투자가나 외국인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들만 잘 챙겨도 의결정족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연내 임시 주총을 열어 새로 감사를 선임하는 ‘꼼수’도 잇따르고 있다. 섀도보팅을 적용해 올해 감사를 선임해놓으면 2~3년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올 4월 이후 일성건설, 황금에스티 등 84개 기업이 이런 식으로 신규 감사를 선임했다.
◆주총 결의요건 완화되나재계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상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주총 보통결의 요건에서 ‘전체 주주의 25% 이상 찬성’(특별결의는 33%) 조항을 빼고 ‘참석 주주의 50% 이상 찬성’(특별결의는 66%)만으로 완화해달라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3% 룰을 없애달라는 것이다.
법무부는 재계 의견을 반영해 주총 결의요건 완화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다만 ‘전체 주주의 25% 이상 찬성’ 규제를 풀어주더라도 일본처럼 의사정족수 규정 도입으로 보완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 룰 폐지는 반대 여론이 변수다. ‘최대주주를 감시해야 할 감사를 최대주주가 마음대로 선임하게 된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클 경우 폐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합산해 3% 룰을 적용하는 대신 특수관계인을 떼어내 각각 3% 룰을 적용하는 식으로 완화될 수도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토 단계일 뿐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내년 3월 주총시즌까지 4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상법 개정은 정부 입법에 비해 절차가 간단한 의원 입법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노철래 새누리당 의원이 상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노 의원은 “주총 결의요건 완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며 “재계와 법무부 의견을 두루 수렴해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섀도보팅
shadow voting.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미참석 주주들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 1% 지분을 보유한 주주 100명 중 10명만 주총에 참석해 찬성과 반대가 7 대 3으로 나올 경우 나머지 90명도 이 비율대로 표결한 것으로 계산한다. 기업들이 주총 정족수를 손쉽게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정부가 내년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오상헌/임도원 기자 ohyeah@hankyung.com